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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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6:10-21 진노의 일곱대접2

  • 김성민목사
  •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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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의 일곱 대접 2 계 16:10-21
요한계시록 16장의 말씀은 마지막 날의 이 땅 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기록 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제목과 같이 진노의 일곱 대접이 이 땅위에 부어지는 것입니 다. 어제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재앙인 땅, 바다, 강과 물의 근원, 해의 재앙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일곱 대접중 나머지 세 대접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겠 습니다.
10-11절 말씀에 다섯 번째 대접이 쏟아집니다. 짐승의 왕좌도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면할 수 는 없음을 보여줍니다. 어둠은 애굽에 임한 아홉 번째 재앙이자 마음 이 완악한 바로도 이스라엘을 풀어 주지 않을 수 없었던 장자의 죽음 재앙 이전의 마 지막 재앙이었습니다(출 10:21-29). 기만 위에 세워진 통치 체제(계 13:5, 13-14)는 어둠 속에 던져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완악한 사람들은 스스로 반역하면서 뿌린 아픈 것을 거두지만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버리는 대신 자신이 받은 의로운 심판을 저주하 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그들의 모습은 땅에 거하는 자들의 전 적인 부패, 타락을 보여주며 이러한 자들에게 영원한 형벌은 정의로운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2-14절 말씀에 여섯 번째 대접이 쏟아집니다.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 에 있을 전쟁을 예비하십니다. 고대 바벨론은 자신들의 성을 방어하기 위해서 사용했 던 것이 유브라데 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강이 마르는 현상이 나타납니다(사 44:27-28). 이것은 하나님이 교회에 대해 전 지구적인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사탄의 능 력을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지 않으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또한 더러운 영(사 탄)은 “여호와아 그의 기름부은 받은 자”다시말해 성도들을 이길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심어주고, 그들을 속여서 성도와 교회와 하나님을 대적하 게 하지만 마지막 날에 그들은 패배와 멸망 당할 것을 나타냅니다.
15절 말씀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일곱 번의 축복 가운데 세 번째 축복 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안일한 사데 교회와 라오 디게아 교회에 대한 책망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상치 못한 순가에 도두같이 오시므로 예수님의 군사는,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하고 벌거벗고 잇다가 수치 를 당하지 않도록 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16절 말씀은 아마겟돈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절입니다. 아마겟돈은 히브리어 로 ‘므깃도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므깃도는 산이 아 니라 평지였지만 몇몇 핵심적인 전쟁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요한의 환상의 상징적인 지형 속에서 므깃도는 그리스도와 사탄의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전 지구적인

전투 지대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17-21절 말씀에 일곱 번째 대접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이전의 대접들과는 다르
게 “되었다”라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있습니다. 이러한 선언은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 에 이르렀고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끝났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도래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 없었던 심한 큰 지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 고 순교자들이 살해당한 현장인 큰 성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 성은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 바벨론입니다. 주님이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와 더불어 오실 때 인 간의 문명은 붕괴될 것입니다. 이것은 해와 달을 어둡게 하고 별들을 그 자리에서 흔 들고 하늘을 두루마리처럼 말아 올리고 각 섬과 산악도 옮겨 놓는 여섯째 인(6:12-17) 에서 이미 예언된 지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 앞에서 처음 하늘과 땅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죄로 더럽혀지지 않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자리를 내주는 모습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사실 지구 종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이 있습니다. 핵 전쟁, 환경 변화, 운석충돌,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인한 종말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의 마지 막 결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삶에 대한 희망입니다. 우리는 역시 상상해 볼 수 있습 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말입니다. 영화에서 죽음을 앞둔 사 람들은 두 가지 모습으로 자신들의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겸허히 마지막을 받아들이 는 사람 그리고 악을 쓰며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죽음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도 이 두 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죽음 이 준비 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준비한 사람들은 무엇이 준비된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준비된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믿음이 그들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십니까? 우리 예수님은 그 죽음을 이기신 분이 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죽음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 라에 거하게 하실 분이십니다.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는 예수님의(행1:11) 약속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심령 속에 성령님의 모습으로 함께하시고 앞으로는 본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묵묵히 믿음 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다 죽음이 나의 눈앞에 다가온다면 예수 님을 더 빨리 만나는 것이고 예수님만 바라보다 우리가 본 그대로 이 땅에 오시면 예 수님을 기쁘게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삶 가운데 예수님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 늘 하루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