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계19:1-10 성도들의 옳은 행실

  • 느헤미야강
  •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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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3() 새벽기도회

 

성도들의 옳은 행실 <19:1-10>

 

18장은 바벨론의 멸망과 심판의 이야기입니다.

바벨론 심판앞에서 하늘, 성도, 사도, 선지자들은 즐거워합니다(18:20).

19장도 할렐루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묵상과 도전이 되는 것은, 내 몸 밖의 악에 대한 심판앞에서

즐거워하고 찬양한다면 내 안의 악함이 훈련과 연단을 통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도 찬양할 수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기 위해 내 안의 악함을 제거하시기 위해

여러모양의 훈련과 연단이 있음을 알고 원망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참 성도임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본문 19;1-10절 말씀중에서 7,8절 말씀에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마지막 날에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러 혼인 잔치가 거행 될 찰나입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그 혼인 잔치를 예비했다라고 나옵니다.

신부가 스스로 예비했다, 교회가 이 땅에서 힘써 종말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8절에, 그 신부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하나님께서 입게 하셨다’.

그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설명합니다.

7절과 8절을 정리하면 성도들의 옳은 행실2가지를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신부에게 구원의 옷, 의의 겉옷을 입히신다는 내용과 함께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 한다는 내용이 함께 나옵니다.

신부가 준비하는 자기 보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리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들의 손발을 움직여 거룩을 드러내도록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 보면 내가 다 견뎌야 하고, 내가 다 감수해야 하고,

내가 다 겪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분명 구원은 믿음으로, 선물로, 은혜로 받습니다.

우리의 옳은 행실이 조건이나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구원을 받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 항복하는 자리로,

그 분의 뜻에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맡기는 자리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발을 움직여 가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신부에게 신랑이 세마포 옷을 입혔다라고도 이야기하고

신부가 혼인잔치를 예비했다라고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비하고 하나님께서 입히시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뭡니까?

거룩입니다. 전에 우리가 아담의 후손으로, 세상,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저지르던, 더러운 것들을 끊어 내고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28-32절은 수 많은 죄의 목록들을 말씀합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등등.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거룩은 윤리 도적적인 바른 삶을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로마서 813절의 몸의 행실은 헬라어로 프락시스 투 소마토스입니다.

정확한 뜻은 몸의 습관, 혹은 지금까지 우리 육신이 훈련하고 연습하여 습득해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육신의 습관은 어떻게 우리에게 형성될까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 보호하심, 자녀라는 소속감을

다 상실해 버리게 되자 스스로 보호하고 성을 쌓고 힘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보호해야 하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또 모든 인간은 비어있는 하나님자리에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은

욕구를 갖습니다. 여기에 누군가가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기만을 원하고,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못할 때 거기에 거절감, 거부감’, ‘상처, 수치를 무의식에 쌓아놓게 됩니다

이러한 상처와 수치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방식을 육신의 습관, 몸의 행실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육신의 습관, 몸의 행실은 거짓말, 무관심, 교만, 무시, 분노, 반항,

이기적인 행동, 험담, 다툼, 복수, 살인, 파괴, 우울증, 알콜 중독,

마약 중독, 일중독, 스포츠 중독등으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지켜야 하기 때문에

철저히 자기 보호의 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정반대로 나타날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기 위해 인위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목숨 걸고 공부를 해서 학벌을 쌓으려 하고재산을 많이 모아 성공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서 사회나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합니다.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인정과 용납을 못 받을까봐 하는 행위들은

겉으로는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죄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보호의 벽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사랑한다든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적으로 볼 때 아무리 훌륭한 일을 많이 하고

아무리 예의 바른 행동을 하고 아무리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바른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네 하나님을 목숨걸고 사랑하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 모든것은 몸의 행실, 육신의 습관입니다.

 

우리의 삶에 나타나야 하는 진짜 옳은 행실은 무엇입니까?

나의 옛 사람, 나만 생각하고, 나만 보호하고, 나만 감싸려던

그 자기 보호의 자아가 깨지는 삶, 그리고 나는 자꾸 감추어지고 숨겨지고

때로는 조롱 받고 때로는 무시당해도 나로 말미암아

내 이웃과 나의 하나님이 이익을 보는 그런 삶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며, 거룩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십자가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어려움, 고통의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보호를 위해

육신의 습관으로 행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끊어내는 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십자가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고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도들의 고난은 핍박받고, 병들, 감옥에 가고,

자식이 속을 썩이고, 사업이 망하고하는 것을 말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성경이 말하는 고난은 반드시 십자가여야 합니다.

나의 몸의 행실이 죽는 것다른 말로 나만을 사랑하던 삶에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사랑하라 하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핍박받고, 병들고, 감옥에 가고, 자식이 속을 썩이고,

사업이 망했을 때 그러한 상황 속에서 몸의 행실이 여전히 살아 꿈틀거린다면

성경이 말하는 고난을 통과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르게살기 위해 내 방식대로 나의 유익을 취하던

그 몸의 행실을 끊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고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는 것은

외적인 상황과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나를 위해, 나를 중심으로살던 삶에서 돌이켜서

나의 육신의 습관을 죽이고, 또 우리 성도들이 내 이웃을 위하고

나의 하나님을 위하는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로 사는 것이

바로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옳은 행실을 그 신부에게 입히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신부들도 혼인잔치를 예비한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몸의 행실을 죽이지 않으면 너희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원을 주시고 행하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더 이상 무시하고

묵살하지 마시고 몸의 행실, 몸의 습관을 죽이는 일을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