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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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9-11 참된 영적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 느헤미야강
  • 201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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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2() 새벽기도회

 

참된 영적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1:9)

 

계시록 19-20절은 요한이 본 첫번째 환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환상의 핵심은 영광을 받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만왕의 왕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입니다.

9-11절은 이 계시 환상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로부터 누구에게

누구를 향하여 주어진 것인지를 밝혀줍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1세기 말의 1차적 독자들(혹은 청자들)은 요한이 받은

계시가 천상의 권위를 지닌 것임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큰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이 살아계신 주의 말씀이 성령 안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 배교의 위험에 처한 고난 받는 성도들

우리가 아는대로 1세기 말의 교회는 배교의 위협에 처해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신앙에 고난이 다가오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어려움이 가중되어오자 교회는 흔들렸고,

많은 사람의 마음이 배교의 유혹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배교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요한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도는 배교의 유혹앞에 서 있는 성도들에게 따듯한 말이나,

주도면밀한 신학적 논리를 펼침으로써 그들을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영광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들이 섬기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영원한 통치를 보여줌으로써 지금 당장 당하는 모든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알게 된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된다면,

배교라는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배교의 유혹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증거함을 인하여 당해야 하는 모든 고난을

영광스럽게 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당신 자신을 환상 가운데서

요한에게 보이시고 그것을 기록하게 하심으로써

자기 백성을 위로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요한이 본 이 위대한 환상-계시는 요한 자신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계시는 믿음으로 고난 당하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는 은혜였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말씀이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어떤 체험을 하거나,

그 특별한 은혜의 체험을 인하여 교만하게 되는 사람들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체험을 주시는 의도를 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의 한 지체에게 베푸시는 특별한 은혜는

주님의 몸인 교회를 이롭게 하고 세우시는 방편으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아야 일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문제로 넘어지지 않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 위대한 환상을 계시로 요한에게 보여주신 목적은

배교의 위험에 처한 자기 백성을 위로하고,

환난 가운데서 당신의 교회를 세워 가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배교의 위험에 처한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보다 더 효력 있는 위로와 힘은 없습니다.

 

2. 참된 영적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본문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주제는,

된 영적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신학교를 가서 30대 후반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목회를 감당하면서 많이 들은 말은

나이도 어린게 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참된 영적 권위는 나이와 직접적 관계가 없습니다.

나이가 많고 경륜이 쌓이면 영적 권위도 자동적으로 함께 있는게 아닙니다.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은 일찍 목사로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다가 29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청년 목사가 목회를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영적 권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영적 권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요한계시록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일까요? 그는 당시 생존하는 유일한 노사도였습니다.

지구상에 그 외에 예수님과 함께 하며 그 행적을 보았고

그 말씀을 가까이에서 직접 배웠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자신의 사도됨을 내세울 수 있었고,

경륜이나 나이를 가지고도 자신의 차별성을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받은 환상-계시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차별성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사도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9절을 봅시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라면 불리한 말이 아닐까요?

차별성은 커녕, 사도는 자신이 그들의 형제이며, 성도들 모두가 받고 있는

환난, 나라,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권위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불리한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참된 영적 권위는

자신을 차별화하는데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참된 영적 권위는 언제나 주님 자신으로부터 옵니다.

 

교회 직분자들의 권위는 어디서 옵니까?

성도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마음, 표를 얻었는가가 아닙니다.

직분의 권위는 주님께서 그 직분을 세우셨다는데서 옵니다.

그리고 주님을 대신하여 주님의 뜻을 따라

그 직분을 행사하는데서 영적 권위는 나옵니다.

모든 참된 영적 권위는 사람이 가진 나이, 권력, 포지션, 학벌,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으로부터 주어집니다.

사도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자신을 형제요,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차별적인 점을 내세우거나 무게를 잡는데서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 것을 알 때,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다. 내가 성령님 안에 있던 어느 주일에

위엄에 찬 나팔 소리 같은 큰 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영화롭고 높아지신 모습을 환상 가운데 봤다.

그분께서 일곱 교회에 보는 것을 기록하여 보내라고 하셨다.”

권위는 여기서 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그것을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셨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권위를 인하여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그 권위 아래 엎으려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 있었기에

제사장 엘리에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지위, 나이가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들을 말씀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위기나 고난앞에서 성도의 위로는 하나님나라와 그리스도의 실재를

경험하게 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부어지는 참된 영적 권위를 누리는

하나님의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