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엡1;1-14 누리고 나눌 평강
- 느헤미야강
-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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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1(수) 새벽기도회
누리고 나눌 평강<엡1:1-14> 1,2절 중심으로
에베소서의 인사말은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입니다.
1,2절에서는 하나님 뜻, 사도, 성도, 은혜, 평강이 주요 단어입니다.
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주어지는 평강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평강은 헬라어로는 ‘에이레네’로, 평화, 평안입니다.
유대인들의 인사말은 ‘샬롬’입니다. 샬롬은 ‘평강이 있을지어다.’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사도 샬롬,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한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는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진지 드셨습니까’ 라고 인사했고,
영국 사람들은 기후가 너무나 안 좋아서 항상 인사가 일기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사말이 ‘Good morning’ ‘good afternoon'인 것입니다.
우리는 평강이라 할 때 이렇듯 싸움이 없는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평화는 더 나아가 원수지간이었던 자들이
서로 화해를 하고 돌아서서 부둥켜안는 것까지를 평강이라 합니다.
평강은 그래서 연합의 의미가 큽니다.
성경은 분리가 있은 뒤에 오는 연합을 평강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평강은 하나님과의 평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범죄 한 인간은 모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로 하나님과 평강의 관계에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바울이 지금 말하는 평강은 하나님과 화해가 되어야만 주어지는
하나님과 관계에서 오는 평강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그 평강이 어떻게 오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짧은 두 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바울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가 된 것이며,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이며, 그들에게 주어질 것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기에
저주받아 마땅한 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계십니까?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어 안에, 그 분이 구약에서 약속한 바로 그 메시아이며,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마고 약속하신 그 평강이,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왔다는 신앙고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메시아가 헬라어로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그 메시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철저하게 인정한 기독교인이란 것입니다.
당시는 예수를 메시아로 부르고 따르는 자들은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했던 시절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처럼 십자가에서 하릴없이 죽어버린 그런 나약한 목수가 아닌
힘 센 메시아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그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평강이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고 만들어져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도 평강을 이야기 합니다.
예레미야 14:13,14절을 보면, 가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범죄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너희가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고 여호와를 섬기는 행위를 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너희에게 평강을 주실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런 선지자들을 보낸 적 없다.
거짓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라는 자들이 ‘너희는 평안하다, 평안하다’하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으므로
메시야가 오면 자기들을 칭찬해 줄 것이며,
자기들만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가르쳤던 것과 똑 같습니다.
그 평안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도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평안은 하나님께서 전적인 그 분의 주권 아래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6장 14절을 보면,
‘가짜 선지자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기적도 일으키고 병도 낫게 하는데 하나님은 평강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이 낫고, 환경이 좋아 지고, 생활이 윤택해 지는 것이
참 평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그런 평강 아니랍니다.
오늘날도 그런 거짓 평안을 외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축복을 받고, 소원이 이루어지며,
내가 원하는 모든 일이 만사형통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고,
병도 안 걸리는 그런 요술램프를 쥔 알라딘 같은 신앙을 외치는 자들이 많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그런 평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물질적, 공간적 편이들이 내게 주어져 있지 않을 때,
그 때도 사라지지 않는 그 어떤 하늘의 것을 ‘평안’이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은 어떤 것입니까? 요14;27절입니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누가복음 12:51-53절은 예수로 인해 분쟁이있을 것이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친한 친구들이 떠나가고 가족 사이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평강은 전쟁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손해보고, 예수 때문에 고단하고,
예수 때문에 멸시받는 것이 평강이 임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렇게 당하면서도 예수로 말미암아 그 마음은 기쁘고 잔잔하기만 한 것,
흔들림없는 삶을 사는 것을 성경이 말하는 평강이라 합니다.
세상의 일이 잘 되어서 주어지는 기쁨은 ‘편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은 절대 흉내 낼 수도 없는 그 것이 바로 평안, 평강, 평화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삶을 간섭하고 있는
그 진리에 기쁘게 순종하며 가는 것을 성경은 평강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분의 공로로만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이 이 땅에 어디에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지금이라도 목을 맬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배짱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 평강은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이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이사야 45:7절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평강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벗어날 수 없는 그러한 어두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평강이 약속된 것입니다. 그게 복음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보십시오. 이사야 9:6절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
그 이름은 ...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한 아기가 태어나는데 그 아기의 이름이 평강의 왕이며
그 아기로 말미암아 평강의 더함이 무궁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평강이 없는 세상에 평강을 주시는 방법이 이 한 아이를 통해서입니다.
성경에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집니다.
스가랴 9:9-10절은,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을 예언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로 말미암아 이방사람들에게 ‘평강’이 전해 질 것이라 예언하십니다.
그런데 그 평강은 이렇게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게 됩니다.
이사야 53: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에베소서 2:14,17절입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17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평강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수난의 정점에 선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의 찔림이 없으면 절대 그 평강은 우리에게 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상함이 없었다면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인지하고 얻을 수 있는
그 평강이 우리에게 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평강은 십자가로만 말미암는 것입니다.
우리 죄인들의 삶을 뚫고 들어 온 십자가,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 평강이 넘칩니다.
에베소서는 옥중서신, 감옥에서 썼습니다. 그 바울에게 평강이 넘쳤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강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누리는 평강,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평강의 의미입니다.
저주받아 죽었어야 할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해의 연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수였던 우리 성도들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서로 돌아서서 서로 부둥켜안고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오는 평강, 그 평강을 무엇과 바꾸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러한 평강을 누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십니다.
‘너희들은 한 몸이니 세상과 너희는 반목하더라도 너희끼리는 평강을 누려라.
너희 안에서는 그 하늘의 평강이 있게 하라’고 하십니다.
골3: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평강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과 화목케 된 자들입니다.
그러한 수직적 화해의 장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수평적으로도 화해와 평강의 장을 이루어 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화목케 된 분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끼리도 당연히 화목케 되어야 합니다.
이 평강을 소유한 자들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기에
서로 서로의 관계에서 평강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평강을 빌어주어야 하며 우리 가운데에
늘 평강이 흐르도록 해야 할 은혜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평강을 누리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그 평강을 나누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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