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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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1;15-23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
- 느헤미야강
-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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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1(수) 새벽기도회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 <엡 1:15-23>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그의 기대를 고백합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향한 기대가 있다면 그것을 기도로 말하듯,
바울 역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한 기대를 기도로 고백합니다.
본문 나타난 이 기대는 실로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우리 서로를 향하여
가져야 할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기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를 향하여 가져야 할 가치 있는 기대-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일입니다.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진정 알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단지 피상적인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체험적인 지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야다’는 체험을 통한 앎을 의미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자세히 알려면 관계와 교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그를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런 하나님을 알아가는 영적 성숙이 없이
삶의 진정한 만족도 충만도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를 이해하는 열쇠 단어가 ‘풍성’(1:7,18)과 ‘충만’(1:23>입니다.
무엇이 풍성하고 충만한 삶입니까?
우리는 창조자이신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속에 그를 알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무엇으로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까?
17절,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성령은 지혜의 영이시고 계시의 영이십니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 우리는 그를 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감’은 단순한 지적 작업이 아닙니다.
고전2:10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알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5장에 가서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 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일입니다.
18절,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성도의 마음눈이 밝아지면 세 가지가 보인다고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보이면 어떤 상황, 어떤 환경 속에서도 당당해 질수가 있고,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소망과 풍성과 능력”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을 위해 예비된 것을 볼 수 만 있다면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들을 보는 눈이 없기에 우리는 좌절하고 절망하고 낙담하는 것입니다.
18-19절입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람들이 절망하는 것은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살아야 할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에게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 소망이 우리 안에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산 소망’(천국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죽을 수 없는 소망, 없어지지 않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산 소망은 막연하게 죽으면 천국 간다는 식의 소망만이 아니라,
우리가 목말라하며 추구하던 모든 가치들이 완벽하게 실현되는
영적 풍성을 경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이런 ‘기업의 영광의 풍성’, 우리에게 상속주시고자
예비하신 부요함을 우리가 이 땅에서부터 누리고 살 수 있도록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던 부활의 능력으로
오늘의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 이런 영적 풍성함, 이런 능력이 함께 한다는 것을
우리의 눈이 열려 볼 수만 있다면 인생을 사는 자세는 얼마나 당당하겠습니까?
셋째, 교회 사역의 영광을 깨닫는 일입니다
22-23절,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
에베소 성도들을 향한 기대를 모아 그들을 위해 기도하던 바울은
마지막 대목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말합니다.
유진 피터슨(메시지)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교회는 세상의 변두리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분은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며
교회를 통해 만물을 자신의 임재로 가득히 채우십니다.”
초대교회는 정말 한줌의 세력도 안되는 미미한 공동체였습니다.
특별히 당대에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의 권력과 비교하면
초라한 핍박받는 변두리 공동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교회가 세상의 변두리가 아닌 세상의 중심이라고 선포합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예수께서 사용하시는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살아감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스러운 특권인가를 일깨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3장에서는 이 교회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5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선포합니다.
물론 지상의 교회는 끊임없이 그 연약함과 부족함을 노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엡5:26-27절입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함이라”
교회가 주님의 기대에 영 미치지 않으실 때
교회의 머리요 주인 되신 주님은 교회를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개혁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유일한 세상의 소망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아니면 어디서 사람들이 구원의 복음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아니면 어디서 사람들이 영적 성숙을 경험하겠습니까?
그래서 에베소서의 쌍둥이 서신으로 일컬어지는 골1:24-25에서
그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어떤 고난도 기꺼이 감수하고
교회를 기쁜 마음으로 섬기겠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스런 교회 사역을 위해
어떤 고난도 감수하고 기쁘게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새생명교회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020년도에도 이미 익숙한 사역도 있을 것이고,
새롭게 우리에게 도전하고 나아가게 하는 사역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역을 위해 어려움도 감수하고 기쁨으로 섬기는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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