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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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2;1-7 하늘에 속한 우리
- 느헤미야강
- 20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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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3(금) 새벽기도회
하늘에 속한 우리 <엡 2:1~7>
모세가 하나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홍해를 건넌 후
그들의 인생은 홍해의 기적 전과 후로 명확한 변화의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기적의 체험이전 그들이 땅에 속한 인생이었다면,
하늘의 기적을 체험한 후 그들은 이제 하늘에 속한 인생이 된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드린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는 그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천년 전 바울이 복음을 전한 에베소 시민들에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바울은 그런 기적의 영적 의미를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땅에 속한 인생과, 하늘에 속한 인생의 차이를 목격하게 됩니다.
땅에 속한 인생과 하늘에 속한 인생-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1. 땅에 속한 인생의 모습입니다(1-3절).
바울 사도는 땅에 속한 인생을 영적으로 죽은 자라고 말합니다.
2:1절을 읽어 보십시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기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죽음’이란 단어의 본래의 뜻은 항상 ‘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허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을 의미하고,
‘죄’는 과녁을 빗나간 것, 즉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행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을 깨트리고 사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바로 그런 허물과 죄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반응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도 못하고 사는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그런 인생은 세 가지의 지배를 받으며 산다고 말합니다.
세상, 마귀, 육체입니다. 이것들 모두는 영적인 대적들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에게 세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마귀는 거짓영적 존재들을 거느리고 우리를 공격하고 있으며,
육신은 우리 안에 자리잡고 우리를 안으로부터 부패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땅에 속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우선 2절에 보면 “세상 풍조를 따르고”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죽은 인생은 세상의 영향을 거부할 능력이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라는 말씀을 순종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했습니다.
이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2)으로 마귀입니다.
마귀의 사명은 우리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세상”과 “마귀”를 증언한 후 이어 3절에는 “육체”에 대하여 말합니다.
여기서 “육체”란 말은 영어로(soma, 신체)가 아니라 (sarxs)로 번역됩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아담에게서부터 물려받은
인간 본연의 타락한 성품 곧 부패성’을 말합니다.
이 타락한 성품의 지배받는 모습이 무엇입니까?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인간의 마음 전체가 이 타락의 영향아래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성도 감성도 의지도 인간의 품성 전체가 다 타락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죽은 자 곧 땅에 속한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4절 이하의 본문의 증언은 이렇게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
하늘에 속한 자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2. 하늘에 속한 인생의 모습입니다(4-7절)
4절은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되었으나 원어는 ‘그러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복음은 하나님의 긍휼과 함께 사랑, 은혜, 자비로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자비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세 가지 기적적인 사건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함께 일으킴을 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함께 하늘에 앉히신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기적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말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6절입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그는 성부 하나님과 우주 만물을 통치하는 자리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바 되었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본래 처음 창조되었을 때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릴 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와 타락은 이 통치의 능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우리로 세상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하늘의 시민권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다시 만물을 다스리는 자의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땅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자로 땅을 다스리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우리가 ‘주와 함께 왕 노릇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왕 노릇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델이신 예수님처럼 ‘섬김과 기도’로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통치권을 행사하게 된 것입니다.
요14:12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 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연합되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거기서 만물을 통치하는 자리에 앉게 되셨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아직도 땅에 살고 있는 불완전하고 연약한
우리들이 어떻게 주님처럼 이런 통치권을 행사하며 살수 있다는 말입니까?
요14:13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 기도하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도구로 말입니다.
요13-16장을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라고 합니다.
그가 마지막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왕 노릇하는 방법을 제자들에게 두 가지로 가르치십니다.
하나는 “섬김”이고(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모범까지 보이심),
또 하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섬김과 기도’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땅에 살면서 땅에 속한 자가 아닌 하늘에 속한자로 살 수가 있습니다.
땅을 변화시키기 위해 땅에 허락하신 하늘에 속한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우리-하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한 평생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이 ‘섬김과 기도’입니다.
영향력 있는 삶, 다스림의 자리에 서기를 원하십니까?
날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도구가 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이루는 방식이 섬김입니다.
우리의 섬김과 기도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섬길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할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세상은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이 하늘에 속한 자로 아직도 땅에 사는 우리의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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