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엡2;8-13 하나님의 걸작품 건축현장과 교회
- 느헤미야강
-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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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4(토) 새벽기도회
하나님의 걸작품 건축현장과 교회 <엡 2:8-13> 8-10, 22절 중심으로
본문 엡2:10에 보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라고 되어 있는데
표준 새 번역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로 되어 있습니다.
본래 희랍어 원문에서는 ‘작품’이란 단어가 ‘poiema’로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에서 영어의 ‘poem’곧 ‘시’라는 단어가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시’는 글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 인생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가 독특한 창조주 하나님의
‘예술적 작품’, 혹은 ‘걸작품’입니다. 걸작품을 ‘masterpiece’라고 합니다.
masterpiece는 master와 piece 두개의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master’는 주인을 뜻하고 ‘piece’는 조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인이 만든 그 위대한 작품의 하나 하나의 조각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를 독특하게 다른 걸작품으로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걸작품다운 저 마다의 인생을 살아 갈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쉴 새 없이 좌절하고 넘어지며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그런 걸작품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구원의 선물을 받으셔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지어진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참담합니다.
그 이유는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타락이 인간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다른 말로 하면 회복입니다.
구원받는 것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첫 걸음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답게 걸작품 인생을 살려면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선물을 받아드리는 방편이 믿음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받아드리는 우리의 응답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호의입니다.
본문 8절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입니다(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그 순간이
우리가 새로운 걸작품 인생으로 회복되는 새창조의 시작입니다.
고후5:17처럼, ‘그리스도안에 있게 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문 10절은 “우리는 그의 지으신 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 본래 의도하셨던 그대로의,
새로운 걸작품 인생으로 회복되기 위한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먼저 믿음으로 이 선물을 받으십시오.
그것이 우리들의 걸작품 인생 창조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2. 창조주의 선한 기대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새 사람이 된 이유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바울은 8-9절에서 행함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우리에게 행함의 무용론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행함으로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구원의 열매로 반드시 선한 행함이 따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엡2:8-9을 <은혜+믿음-행함=구원>으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이 방정식은 이렇게도 풀 수 있습니다. <은혜+믿음=구원+행함>입니다.
구원의 결과로서 따라 올 선한 행위가 바로 지금부터
우리의 인생을 아름다운 작품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된 후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이 죄는 인생의 작품을 망가뜨리는 요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과 된 후에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물으실 것입니다.
이 질문에 가장 신학적인 대답을 남긴 사람이 성 어거스틴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인생은 <범죄 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후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데도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죄를 안 지을 수 있는데 지었다면,
우리는 그 죄를 다시 극복할 희망이 있습니다.
다른말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선을 행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악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선을 행하지 않고도
살수도 있지만 달라진 것은 선을 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희망이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작품으로서의 가능성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선한 일로 우리의 새 인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모든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10절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한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 교회 공동체의 지체로서 그 기대를 실현해야 합니다.
본문은 10절로 끝나지만,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1절 이하에서
인생이 거룩한 작품으로 드려지기 위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두셨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2:22)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함께 아름다운 성전으로 지어져 가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았어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성이 존재하고 연약함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쉽게 죄악에 굴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다가 쉽게 낙심하고 쉽게 포기할 수 있습니다.
갈6:9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래서 함께 하나님의 선을 이루도록 함께 지어져 가야 할 존재로
묶어 주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에베소서 나머지 전체는
이런 교회 공동체의 필요성과 영광을 보여 주려는 기록목적이 있습니다.
인생이 혼자서 이런 하나님의 기대를 이룰 수 없음을 아신
창조주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홀로 사는 인생이 아닌
더불어 사는 인생이 되도록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성경에서 처음 ‘좋지 못하다’는 표현이 언제 등장하는지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2:18에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에서입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그
래서 아담의 배필로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로 부부가 되게 하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만으로도 성취하기 어려운 더 큰 선을 이루시고자
하나님은 더 큰 영적 가족을 주시기로 계획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엡2:19의 말씀이 이것을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외인이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
그래서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붙들어 주고, 함께 세워주고,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며
서로의 인생이 걸작품이 되도록 돕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선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교제 안에서 우리는 울고 웃으며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하면서
하나님의 선을 추구하는 걸작품 인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함께 지어져 가는 공사 중인 성전이라고 한 것입니다.
공사의 모든 진행 과정이 다 건설적인 것은 아닙니다.
건축현장은 많은 사고의 위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건축현장을 피해서
우리는 아름다운 성전으로 결코 지어져 갈수 없습니다.
그래서 건축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인내하며 세워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노스 캐롤라이나 샬롯이라는 도시에 가면 빌리 그래함 기념도서관이 있습니다.
이 도서관 입구 우측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빌리 그래함 박사의 부인
루스 그래함 여사의 소박한 무덤이 있습니다.
묘비문에 이런 말이 쓰여져 있답니다. <공사 끝! 그 동안의 인내를 감사함>.
이 묘비명의 유래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빌리 그래함 내외가 운전을 하고 가는데 자기 동네에 늘
“공사중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던 공사 표지판 대신에
“공사끝 그 동안의 인내를 감사드립니다.”는 간판이
새롭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루스 여사가 남편에게
“여보, 나 죽으면 저 간판 내 무덤에 세워주어요!”하고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공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그 날을 소망하며
건축 현장에서 인내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불평하는 대신
서로를 세워가는 기쁨으로 날마다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위대한 영적 건축현장인 교회 공동체를 인하여 감사하실 수 있으십니까?
매일, 매주 교회에 나올때마다 우리가 이름표를 이렇게 달고 나오면 될까요?
‘제 이름은 공사중입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조금만 인내해주세요.’
하나님의 위대한 영적 건축현장이 교회입니다.
나의 모난 부분도, 그의 모난 부분이 서로 부딪치히 아프고 상처됩니다.
그래도 그렇게 부딪치며 울다가 웃다가 어느새 부드러워져 있는,
누구나 품고 누구에게도 안기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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