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엡4;25-32 성령을 근심케 함과 성령음성 듣는 것
- 느헤미야강
- 2019-12-22
- 478 회
- 0 건
20191221(토) 새벽기도회
성령을 근심케 함과 성령음성 듣는 것 <엡 4:25-32>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으면 우리안에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그리고 믿는자는 누구나 마음에 오신 성령님을 알 수 있고,
친밀히 교제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신 증거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 중 하나가 성령의 근심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심의 가책과 다른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경건치 못한 삶을 살 때, 예배와 기도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을 때, 누가 말하기 전에 마음에 책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의 근심인 것입니다.
30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25절에서 29절을 보면 여러 가지 책망과 권면이 나옵니다.
거짓을 버리라(25),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26),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7),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28),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29).
이 말씀을 하시고는 30절에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처음 듣지 않았습니다. 이미 잘 아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이 마음에 계신 것을 믿지 못하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어려워 합니다.
이유는 성령님을 육신으로 체험하고
성령님의 음성을 육성으로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의 근심”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이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때, 마음이 무거운 것이 그것입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의 음성이 생각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이고 귀로 들려야 사실이고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만 믿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미국 코넬대에서 유명한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차가운 물이 담긴 비커에 넣었습니다.
비커 밑에 알코올 램프를 놓고 가열을 시작하면서 개구리의 반응을 살핍니다.
찬 물 속에 개구리는 마음 놓고 헤엄을 칩니다.
물이 서서히 더워지기 때문에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5도 물속에서 45도까지 견딜 수 없는 온도에까지 이르렀는데도
개구리는 아무런 변화를 못 느낍니다.
결국 개구리는 한번 뛰어 올라보지도 못한 채
기분 좋게 잠을 자면서 죽었습니다.
우리가 눈에 귀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동성애, 낙태, 음란 동영상 등이 익숙해졌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간통죄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각이 비이커 속의 개구리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도 자꾸 듣고 보다 보면 익숙해져서
문제 의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자꾸 바라보다가 결국 미혹받아 넘어졌습니다.
정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살면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령님께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다고 하지만,
성경 말씀을 읽고 주님 말씀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면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립니다. 잠잠히 기다리면 됩니다.
분명히 오늘 글로 읽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립니다.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할 말씀이 26-27절 말씀입니다.
26-27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가 우리 마음이 중요한 것을 알기에
우리 마음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마음에 들어오니 마귀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에베소 교인들이 거짓말도 잘하고 화도 잘 내고
도적질도 하고 더러운 말을 일삼는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의 실상입니다.
어떻게 교회가 이러며 성도가 되었으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답은 분명합니다. 마귀가 성도들의 마음에 들어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옵니까?
해가 지도록 분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됩니다.
화만그런게 아닙니다. 모든 죄가 마귀가 틈을 타는 문입니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거짓말, 도적질, 더러운 말, 다 마귀가 틈을 타는 조건입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 주었을 때,
그 생각을 품고 있으니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갔고,
결국 예수님을 팔게 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땅 팔아 교회에 헌금하려다가
인색한 마음, 거짓말하는 마음을 넣어준 마귀를 분별하지 못하고
일부만 바치면서 다 바치는 것이라 거짓말하였을 때,
베드로의 무서운 책망을 받았습니다.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두려운 것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고
마귀가 주는 생각을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중국 만리장성이 완성된 후 처은 100년 동안
세 번이나 외적에게 침입을 당했습니다.
만리장성에 결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만리장성 문지기가 뇌물을 받고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된 삶을 사는 비결은 마귀에게는 마음 문을 굳게 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마음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 문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마음 문을 단속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31-32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길거리에서 늘 부디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평범한 삶에서 성령의 역사가 체험되어야 진짜입니다.
교회 부흥의 역사속에 이야기입니다.
작은 교회에 다니던 여성도 한 분이 주기도문을 하다가 말이 막혔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이 대목에 이르러 더 계속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미워하고 있는 한 교인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예배드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습니다.
오랫동안 보지 않고 지내던 그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내 죄를 회개합니다." 울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시간 화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와 주변 지역에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복되게 살고 잘 살기 위하여 더 노력하고
몸부림쳐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셨으니 성령님만 의지하고
오직 성령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계속하여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에 오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비록 성령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고 근심하실지라도
그 또한 너무나 감사한 것입니다.
떠나지 않으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성령님께 순종치 못한 것을 회개합시다!
근심하실지라도 떠나지 않으신 것을 감사합시다!
이제 마귀에게 마음 문을 굳게 닫습니다.
성령님께 마음 문을 활짝 엽니다.
- 이전글 창1장_하나님이 주어가 되게하라 20.01.02
- 다음글 엡4;17-24 심령이 새롭게 되어 19.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