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창4장_네가 무엇을 하였느나(가인의 길, 아벨의 길)

  • 느헤미야강
  • 20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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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7.() 새벽기도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4>

 

창세기 3장을 보면 죄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두려움의 이유를 모릅니다.

벗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책임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죄 앞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은 아담과 하와의 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줍니다.

1, 아담과 하와가 가인을 낳습니다.

가인은 얻음이라는 뜻입니다.

아들을 낳고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죄지은 아담과 하와는 가죽옷을 입히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 한 후

자녀를 주신 것에 대한 고백을 이렇게 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 은혜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을 가죽옷 입히시고 살게하신 은혜에 대한 고백입니다.

 

찬송가 70장은 봉헌 찬송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내것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대상29;14절에 다윗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원했으나

솔로몬을 통해 받기 원하셨습니다.

모든 물건을 준비해 놓은 후 모든 것 주께로부터 왔으니

주님께 드립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이 말은 세월의 끝에 이르러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보기 원하셨습니다.

가인에게 농사를 맡기시고, 아벨에게는 가축을 맡기겼습니다.

때가 되어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드리는지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인도 드렸고, 아벨도 드렸습니다.

 

4,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받으셨다는 단어 솨아. 하나님께서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주도면밀하게 받으시고 주목하셨습니다.

5,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의 제물은 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받으심의 특징은 아벨과 그 제물, 가인과 그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드린 사람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아벨은 주목하여 받으시고, 가인은 보지도 않고 거절하게 하셨을까요?

짐승과 피의 유무가 아닙니다.

제사중에는 소제,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드리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해답은 6절에 있습니다.

네가 분하여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특별한 날 두 자녀가 부모님께 선물을 드렸습니다.

둘째 자녀의 선물을 받고, 큰 아이의 선물을 거절했습니다.

당연히 서운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내기 이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

왜 제 것은 안 받으세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물어야 합니다.

부모가 큰 아이가 전혀 거룩하지 않은 일로 돈을 벌어 선물을 산 것을

알았다면 선물이라도 안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선물이 참 된 것이 되려면 어떻게 준비하고 드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일상의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반면에 가인은 내 중심이었습니다. 내 방식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내가 안 받았다는 것으로 불평하고 화낼 것 아니다.’ 그런 뜻입니다.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포준 새번역; 네가 바른 예배를 드렸다면 그럴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른 예배를 안드렸다는 증거입니다.

가인이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다면 아벨을 들에 나가서 죽일 수 없습니다.

들에서 죽이면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했을 까요?

사람을 의식하여 들에 나갔습니다. 아무도 못 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식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도 없고 범죄한 것입니다.

 

아담,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가죽옷으로 은혜를 주었으나

가인같은 자녀가 나왔습니다.

가인은 사탄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 지배하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죄는 무서운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자신 제물 안 받는 것이 자신때문인데

자기보다 동생이 너무 잘드려서,

쟤 때문에 내 것 열납 않으셨다 생각했습니다.

원인을 자기에서 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찾았습니다.

 

둘째로 한 부모에서 같은 핏불 타고 난다고

평생 같은 형제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거듭나지 않으면 평생 원수 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적군이 아닙니다. 형제요, 자녀입니다.

부모는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셋째, 가인이 아벨을 죽인 순간, 역사는 두 부류로 나뉘어 흘러갑니다.

하나님 중심인간과 자기 중심적 인간입니다.

하나님 중심 인간은 아벨, 셋입니다. 성경은 이 길을 아벨의 길이라 합니다.

아벨의 길에서 하나님 나라, 의인의 길이 이어집니다.

자기중심적 인간은 가인입니다. 성경은 이 길을 가인의 길이라 합니다.

세상나라, 악인의 길로 이어집니다.


이 구조는 갈등하며 역사속에서 부딪치며 이어갑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세상에서 악인이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도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그들이 이긴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넓은 길로 갑니다.

정말 그럴까요? 어떤 사람이 의로운 길, 아벨의 길을 갑니까?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그 길을 걷습니다.

생명의 길, 의의 길이 악에 있지 않고 이 세상의 삶이 영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 이 길을 갑니다.

 

우리 앞에서 두 길이 놓여 있습니다.

가인의 길, 나 중심의 길, 삶과 믿음이 괴리된 길

그리고 바른 예배드림 때문에 희생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때에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떤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가인의 길입니까? 아벨이 길 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