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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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9장_노아가 벌거벗은지라_창9장
- 느헤미야강
-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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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4(화) 새벽기도회
노아가 벌거벗은지라 <창세기 9장>
1녀 17일만에 노아와 가족이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 방주 바깥은 지상 낙원이 아니었습니다.
방주 바깥으로 나오면 하고 싶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군대에서 휴가 나오면 제일 먼저 먹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번일 잘 되면 어떻게 하겠다 계획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 마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자기를 자기 욕망, 하고싶은 것을 죽인 것입니다.
내 뜻 내려 놓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내가 살고 싶은데 죽은 것이 예배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려 놓고 하나님 바라보는 것이 예배입니다.
새벽, 수요, 주일예배 드림이 내가 죽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인 것을 알고
더 바르고 온전하게 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9;1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번성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창9;1과 6;1을 비교해보십시오.
가인의 번성이 있고, 노아의 번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번성과 충만함이 있습니다. 번성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번성, 충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충만함과 번성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는 안 갖고 생육, 번성, 충만, 풍요만을
목적하며 살다가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전에는 동물들도 채식을 먹었을 것입니다.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언약으로 무지개 언약을 허락하셨습니다.
어쩌면 물만 보면 먹구름만 보면 트라우마가 생겼을지도 모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였음을 알게 됩니다.
18절 이하,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그 후 35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 기간동안 노아의 삶의 이야기가 기록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술마시고 옷 벗은채 잠들었다는 내용입니다.
20절,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다.
‘이쉬하 아담아’, 그 땅의 사람 이란 뜻입니다.
그 땅의 사람인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었다.
21절, 포도주를 마시고: 하(정관사) + 야인(포도주)
정관사 하는 포도주와 뗄 수 없는 관계일 때 사용합니다.
당시 습관처럼 식사시 음료차원에서가 아니라
술 자체를 즐기를 표현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취하여’(솨카르)는 ‘솨카’(마시다, 죽 들이키다)의 최상급입니다.
꼭지가 돌때까지 마신 것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취하였다. 그리고(와우) 벌거벗었다.
‘와우’는 연속법으로, 어떤 동작이 끊임없이 이어질 때 사용합니다.
노아는 할 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마시고 취하고 정신없어서
옷 벗은지도 모르고 한마디로 정신줄 놓았다는 말입니다.
1년 17일 방주안에서 하늘에만 시선을 고정 했던 사람입니다.
350년 지난 뒤 어느새 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땅을 보는 사람, 육체의 사람, 저기 통제력 상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세월입니다.
오늘 포도나무 심으면 세월 흘러야 따서 술 담그고,
시간 흘러야 포도주가 됩니다.
인생도 시간 흐른디 변합니다. 술의 사람, 땅의 사람으로.
세월 흐르면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고, 지위는 높아지고, 가진 것 많아지고,
누린 것 많아지고, 휘하의 사람도 많아집니다.
그러다보면 하나님 보다 내가 중심에 놓여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갈 때 그 흐름이 영적 도약기회가 되기도 하고,
교만할 수 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속에서 영적 성숙 이룬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보면 나는 늘 작은 사람입니다. 교만할 틈이 없습니다.
노아는 셈, 함, 야벳 3형제를 낳았습니다.
22절 이하, 가나안 아버지 함, 아버지 하체를 보고 형제들에게 알입니다.
셈, 야벳이 뒷 걸음쳐 아버지 하체를 덮습니다.
노아가 술 깬 후 함을 저주합니다.
본 것이 저주 받을 일입니까?
보면서 조롱, 성적 조롱, 즐기면서 보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저주 받을 일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선언합니다.
노아 세 아들중에 두 아들이 복 받고 한 아들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아 홍수 이전, 성적 타락, 폭력, 세상적인 극치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때에 그 문화가 다시 들어온 것입니다.
노아 아버지의 믿음으로 구원받은 은혜를 망각했습니다.
이후 역사는 하나님의 마인드와 세상 마인드로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마인드에 셈과 야벳, 세상 마인드에 가나안, 함입니다.
함은 보고나서 해야 할 일 안했습니다. 보았으면 해야 할 일 해야 합니다.
셈, 아벳은 안 보고도 할 일 했습니다.
위대한 노아, 땅의 사람으로 살아간 순간 아들 중 하나가 타락했습니다.
알콜 중독자에게서 셈, 아벳, 함도 있었습니다.
자식 잘 못 되면 부모책임 면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보던 사람이 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노아 이야기가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 일 수 있습니다.
350년 기록의 결론이 꼭지 도는 삶이었습니다.
부모, 세상 떠나는 날까지 바른 신앙의 이정표를 가져야 합니다.
나이 들수록 영적 성숙함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어른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노아 같은 사람도 실수했고 나도 실수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내가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를 살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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