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41030(수) D6묵상, 두 문과 두 길, 마태복음 7:13-14

- 최고관리자
- 2024-10-29
- 160 회
- 0 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태복음 7:13–14.)
마태복음 7장 13-14절은 예수님의 산상수훈(5-7장)의 결론과 같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7장까지 이어지는 산상수훈은 최후 종말의 심판에 대한 네 가지의 경고로 마칩니다. 마태복음 7장13-27절에서 예수님은 4가지의 상반되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두 문과 두 길(13-14절), 두 나무(15-20), 두 주장(21-23절), 두 집(24-27절). 오늘 묵상 본문인 마태복음 7장 13-14절은 '두 문과 두 길'은 예수님의 4가지의 비유의 말씀의 첫번째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13). 이 구절을 누가복음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13:24)로 말하여 ‘힘쓰라’는 강조표현을 통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줍니다. 좁은 문의 반대는 인간의 본성, 죄성을 따르는 쉽고 편하고 넓은 길입니다. D6대물림 묵상 가이드가 이를 간략하게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욕을 따르기 때문에 그 길에 머물러 있기가 쉽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죄의 욕망을 따라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이 길을 "쉽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방향을 바꾸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러운 대로 계속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고 그저 넓고 잘 닦인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불행히도 그것은 영적 파멸로 끝납니다. 죄악된 삶을 사는 것이 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의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소수에 속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길이 더 힘들고 덜 자주 가는 길이라고 솔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영원한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여행의 어려움보다는 목적지에 집중하기를 원하십니다.” D6대물림 The Brink(청년부 묵상), 13호 가을호, 수요일 P46
진리는 자신을 복종시키는 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삶,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날마다 포기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좁은 문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13).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이어서 누구든지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기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안심을 합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걷지 않는 좁은 길은 불안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과한 길이기에 나도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고자 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본성으로은 자발적으로 걸을 수 없습니다. 은혜가 나를 이끌고 가는 길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길에서도 예수 믿으면 성공하고, 부자되며, 늘 건강하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다른 길입니다. 이미 어떤 것을 주셨다면 그것은 사명으로 주신 것이지 거기에 머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길을 잘 못 오해하면 넓은 길이요 멸망으로 이어지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서 찾는 자가 적습니다(14). 십자가 복음은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기 때문에 그 길을 좋아하면서 따르는 사람은 적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은 길입니다.
왜 좁은 문, 좁은 길이 생명의 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통과하고 좁은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 성령의 인도하심과 더불어 사는 사람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다.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살려고 애쓰는 자가 걷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도리어 감사와 찬양이 있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이는 구원의 길이 사람의 숫자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숫자를 추구하거나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 제자들로 하여금 따르도록 하신 성경의 길을 얼마나 걷고 있는지를 살피면 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인간이 결코 스스로 좋아할 수 없는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살기 위해서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게 역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역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 진리는 거리끼고 미련한 것이 됩니다(고전 1:23). 미련한 길은 결코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 하나님께서 믿음이란 선물을 주신 사람들에게 이 진리는 죄인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됩니다(고전 1:24). 이 좁은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길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