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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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5(목)D6묵상, 지혜자의 책망, 우매자의 노래, 전도서 7;5

  • 최고관리자
  •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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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역설적인 진리를 말하면서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촉구합니다. 지혜자의 책망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우매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냐? 그러나 이것은 단지 책망과 노래의 비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노래가 백번 낫습니다. 노래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책망은 무겁고 아픕니다. 책망은 듣는이를 기분을 상하게 하고 기를 죽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의미로 단순히 책망과 노래를 비교해서 노래가 낫다는 결론에 이를 수 없습니다. 

책망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그것이 지혜자의 책망일 때 그 책망은 가치가 있고 노래 역시 지혜자의 노래일 때 그 노래는 의미가 있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 책망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면 더욱 기쁨이 딥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자의 책망이 우매자의 노래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은 책망이라 해서 모두 나쁜 것이 아니고 또 노래라 해서 다 좋은 것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책망과 노래를 대조하면서 우매자의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6절은, 우매자의 노래를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와 같다고 말합니다.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탈 때 아주 요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에 비하여 화력은 아주 약하고 불타는 시간이 극히 짧기 때문에 솥에 있는 음식을 익히기에는 아주 미흡합니다. 이처럼 우매자의 노래는 시끄럽고 순간적이어서 잠깐동안의 즐거움은 될지언정 진정한 기쁨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런 우매자의 노래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매자는 책망의 말을 해야 할때에도 칭찬으로 듣는 이를 즐겁게 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에 침미 마르도록 칭찬을 합니다. 그것이 노래와 같다는 것입니다. 때로 아첨의 소리와 같습니다. 이런 노래는 무서운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매한 사람의 노래에 속고, 우매한 사람의 노래에 빠져서 망했는지 모릅니다. 그 환락의 끝은 비애일 뿐입니다. 노래는 순간적으로 사람을 즐겁게 해줍니다. 위로합니다. 흥을 돋구기도 합니다. 노래하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반전의 위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고 그 힘의 실상은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우매자의 노래는 의미없는 노래, 덕이 될 수 없는 노래, 우리의 삶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세속적인 노래를 의미합니다. 

반면에 지혜자의 노래는 가치가 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 가운데 거핫힙니다. 찬양은 지혜 자들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전하고 내가 구원 받은 놀라운 사실을 알리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이요 간증입니다. 고난당할 때 기도하고 즐거울 때 찬양해야 합니다. 우매자의 노래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매 자에게는 노래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것과 같은 그런 노래입니다. 그러나 지혜자의 입술에는 찬양이 있고 찬송이 있고 찬미가 있습니다.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책망은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책망은 함부로 할 것이 아니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책망을 듣는 것이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첨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정말로 자기를 위해서 진정으로 책망하고 충고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달콤한 노래와 같은 아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책망하고 충고하는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양약은 입에 쓰고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노래 소리 같은 아첨과 아부의 말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지금은 쓰고 아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하는 그 소리가 나를 살리는 말씀인줄로 알고 달게 듣는 그 사람은 장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종종 책망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기록된 바리새인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은 아주 심한 책망의 소리입니다.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선생으로서 이런 진리를 알지 못하는가? 주님의 책망은 그를 부끄럽게 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할 목적으로가 아니라 진리를 깨달아 알고 거듭남의 확고한 진리를 알게 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너희들을 찾을 때에 매를 가지고 가랴? 아니면 칭찬을 가지고 가랴? 하고 물었습니다. 우매자의 노래에 마음을 빼앗길 것인가? 아니면 지혜자의 책망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지금 결정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서 심히 탄식하시며 책망하고 있습니다. 

왜 책망을 들어야 하는가?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탐욕 때문에, 뇌물 때문에 잘못된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책망이 꼭 필요합니다. 

다윗은 누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게 한 죄인 줄도 몰랐을 때 나단 선지자의 책망에 귀를 기울여서 살았습니다. 그 책망은 왕의 자존심을 상하는 것이요, 아픈 채찍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책망을 달게 받았습니다. 다윗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책망은 서로간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책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듣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