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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회개 기도 - 마 26:69~75
- 디모데준
- 2016-03-22
- 1,748 회
- 3 건
3월21일 말씀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회개 기도
마태복음 26장 69절~75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69절: 갈릴리 사람
71절: 나사렛 사람
75절: 베드로가 자기를 부인 할 걸 아셨던 분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나타나는가?
69절: 베드로를 알아보고 지목한 한 여종
70절: 모든 사람 앞에서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
71절: 베드로를 알아보고 지목한 다른 한 여종
72절: 모든 사람 앞에서 맹세까지 하며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
73절: 베드로를 알아보고 지목한 사람들
74절: 모든 사람 앞에서 저주하며, 맹세하며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
75절: 주님이 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한 베드로
궁금한 것과 느낀점들이 무엇인가?
69절 - 베드로는 왜 멀리 안도망가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을까?
주님을 버리고 도망 가긴 했지만,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예루살렘에 남게 했을까?
아니면 혈기 많은 베드로가 어떻게든 주님을 탈출 시켜 보려고 예루살렘에 남아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걸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베드로는 주님 주위에 있었다.
69,71,73절 - 주님을 부인한 주님의 사람
죽음이 두려워 주님을 부인 했던 베드로.
베드로 처럼 입으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주님을 부인 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사람들과 밥먹을 때 눈치보며 서둘러 기도하고,
무엇 무엇을 왜 안하냐 물어볼 때 자신있게 교회 다녀서 안합니다 라고 자신있게 고백 못했던
제 자신을 베드로를 통하여 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기
눈치보지 않고 기도하며,
자신있게 교회 다닙니다! 크리스찬 입니다! 라고 고백하기.
고백한 후, 그에 합당한 삶을 삶으로 주님을 나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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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ramdeo 16-03-22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셨을때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않겠나이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나는 주를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호언장담했었던 배드로 그가 무너진 모습을 봅니다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동산에 기도하러가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고 했는데 돌아와서보니 자고 있었던 제자들 과 배드로
꺠어서 기도하지 못해서 주님의 크신 역사를 알수없었기에 무력으로 제압할려고 했고 마침내는 주님을 부인하게 되었을까 ?
나는 결코 넘어지지않을것같은 자만심이 내속에 있지만 실제의 삶가운데는 당연히 그렇지 못합니다
어떠한 큰 테두리에서는 주님을부인하지않지만 지극히 일상적이고 작은부분에서는 주님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하는것같습니다
감사하게 생각이 드는것은 배드로가 닭이 울때 주님이 하신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하고 회개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가운데 있을때 그냥 내 버려두지않고 성령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우리의 잘못을 꺠닫??하고 회개하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이후 베드로가 주님의 참제자로서의 삶을 살다 순교당하신것처럼 나의 삶도 나의 죄로 인한 고난을 당하기보다는 주님을 위해서살기위한 의 의 고난을 당당히 잘 견디며 살수있기를 소망해봅니다 -
- 다니엘 16-03-22
- !→ 묵상과 적용, 실천하기
하나.
베드로는 자신감이 있었다.
감정이 충만했고, 의지도 확고했다.
죽음까지 언급하며 맹세할 정도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자신감이 넘쳐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오늘 속절없이 무너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예수님을 부인했다.
반복되는 추궁에 맹세와 저주까지 섞어 주님을 모른다고 했다.
이렇게 연약한 부분이 나에게도 있다.
겸손해야 하는 이유이다.
은혜가 필요한 이유이다.
둘.
예수님이 잡히신 그곳에 베드로를 정확히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다.
베드로는 어두운 곳에서 정확히 알아보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설교하시고 기적을 일으킨 현장,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곁에 있던 사람들도 베드로의 음성을 기억했다.
그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과 그 곳 사투리를 알아 들었던게다.
그들 역시
예수님이 계시던 곳에 참석했고 말씀을 들었으나 믿은 것은 아니었다.
같이 있었다고 믿는 것은 아니다.
설교를 듣고 소그룹에 참석했다고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다른 것 때문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셋.
한 사람의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누구보다 열정과 확신이 강했던 사람.
그러나 믿음은 열정과 용기와는 다른것이다.
평상시, 아무런 일 없을때는 모른다.
위기일때 구별된다.
베드로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가지고 주님을 모른다 했다.
위기탈출 넘버원!
잠시 주님 모른다 함으로 위기를 벗어났을 수는 있으나
그 마음에 씻을 수 없는 눈물은 어쩌지 못했다.
후회와 회한의 눈물.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눈물과 감사가 있다.
눅22;61절은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 할때
주님은 돌이켜 베드로의 눈과 눈을 마주쳐 보셨다고 했다.
주님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고,
연약함과 죄책감 때문에 울고,
자신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눈빛 때문에!
베드로를 처음 만나주셨을때의 그 눈빛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하실때의 그 눈빛이 너무나 똑같았다.
처음 만나셨을때와 주님을 모른다 했을때 그 눈빛.
‘엠블레포’.
둘 다 ‘보다’라는 말이다.
괜찮아!
난 네가 나를 모른다고 할 줄 알았어.
내가 말했잖아.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아파하고 눈물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말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을 네가 깨닫고
앞으로 내가 너희들에게 말했던 모든 것을 기억하며
당부한 그 길을 걸어가주었으면 좋겠어.
오늘 네가 나를 모른다 할거라 했던것 그대로 되어졌듯이
앞으로 말씀의 역사도 그렇게 되어져갈거아.
짧은 아주 짧은 그 순간에
그런 말씀을 마음으로 품고 던져주시지 않았을까?
이 사건이후 베드로는 수제자 다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쓰러지고 무너진것이 실패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것이 실패이다.
베드로, 다시 일어섰다.
말씀을 기억함으로,
주님과 마주친 그 눈빛으로.
그리고 통회함으로.
열정이 있다지만 자신의 한계를 보았던 베드로.
주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라 하실 때 자고 있던 자신.
기도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구나.
말보다, 열정보다, 자신감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구나.
내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구나.
베드로는 아니라 했지만
예수님 말씀대로 되었다.
세상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치 앞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성경대로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성경대로 사는 삶 살아야지.
성경을 알아야지.
성경을 묵상해야지.
하루도 빼놓치 말아야지.
기도하며 말씀으로 더 자신을 무장하며 살아야지. -
- 로뎀나무아래서 16-03-25
- 디모데준님의 묵상처럼....
우리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을 할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거룩한 척...
때로는 누구에게 보이면 부끄러워서 주님을 모르는 척...
이 모습이 베드로의 모습이겠지요, 주님 앞에서는 "죽어도 배신안한다!"
그러나 주님이 잡혀가시고 위험에 처하니까 "주님을 모른다..."
우리들은 크리스찬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써 당당하게 세상에서 살아야 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의 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