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마 27:1~10 - 후회로만 그치면 기회는 또다시 없습니다

  • 한결같은사람
  • 2016-03-23
  • 690 회
  • 2 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절: 죽임 당하실 예수님
2절: 결박되어 끌려가신 예수님
3절: 자기 제자에게 팔리신 예수님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나타나는가?

1절: 예수님을 죽이려 같이 모여 의논한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
2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긴 무리들
3,4절: 자기 죄를 깨닫고 은을 다시 돌려준 가룟 유다,  
5절: 은을 성소에 던저놓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유다
6,7절: 은을 가지고 의논한 후 토기장이의 밭을 산 대제사장들

궁금한 것과 느낀점들이 무엇인가?

1,2절, 사람들은 악한 일을 할때 만큼은 단합이 잘되며,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 한다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우린 믿는 자로서 세상사람들과 반대로,
주님의 일을 할때 단합이 잘되며,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 하는 새생명교회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5절, 유다는 주님과 3년동안 같이 있으면서, 주님께서는 회개하면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걸 봤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은 회개 하지 않았다.
후회의 자리까지만 나왔지, 더 나아가 회개의 자리까진 나오지 못했다. 
보고 들은 것과 믿는것과 행동하는건 다르다는걸 다시 느꼈다.
아무리 옆에서 듣고 보았다 해도, 믿는것은 아니다. (3.22 큐티 - 다니엘님 댓글중) 
또 믿어도 그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다를게 없는거 같다.
베드로와 유다는 똑같이 듣고 보았다, 그러나 그 둘의 결말은 완전히 달랐다.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기

먼저 죄를 짓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지만,
죄를 짓고 나서 유다처럼 후회에서 그치는게 아닌
베드로 처럼 회개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내가 되도록 해야겠다.
    • 다니엘 16-03-23
      “사람들은 악한 일을 할때 만큼은 단합이 잘되며,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 한다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우린 믿는 자로서 세상사람들과 반대로,
      주님의 일을 할때 단합이 잘되며,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 하는 새생명교회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 ‘한결같은 사람’ 큐티 중에서 -

      이 묵상이 너무 좋습니다.


      [참된 회개는 삶으로 증명해내야]

      5절,
      가룟유다는 왜 주님을 은 30냥에 팔아 넘겼을까?
      팔아넘긴 후에 예수님께서 고난당하고 죽임당할 것을 몰랐을까?
      예수님을 팔아 넘긴 후에 유다는 스스로 뉘우쳤으나 자살로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 했다.
      유다의 잘못은 무엇인가?
      유다의 삶속에서 깨닫게 하시는 영적교훈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내 삶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후회했다고, 잘못은 인정했다고 바른 회개는 아니다.
      후회와 양심의 가책, 미안한 마음은 참 회개가 아니다.
      유다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했다.
      주님앞에 나갈 방도가 없었다면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었어야 했다.
      그리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
      변화된 삶을 살았어야 했다.
      참된 회개는 반드시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죄책감이 바른 회개로 나타나지 않으면 이성을 잃게 되고,
      이성을 잃으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3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면서
      수많은 죄인과 세리와 가난한 자와 약한자와 함께 하시고
      누구든지 구하는자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는 그 은혜가
      기억나지 않았는가보다.
      목적이 다르면 보이지 않을수도 있겠다.
      유다는 은30냥을 쓰시도 못했다.
      그렇게 물질에 욕심 많더니 정작 내 던져야 했다.

      회개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늘 기회를 주셨다.
      베드로는 Before 와 After 가 달랐던 사람이다.
      이 둘 사이에 세 번 부인과 회개가 놓여 있다.
      가룟유다도 그랬어야 했다.
      배신이라는 면에서 유다나 베드로는 별 반 다르지 않다.
      주님을 모른다고 한 것이나 팔아 넘긴것이나 그게 그거다.
      주님을 모르는척 하는것이나 주님을 못 본척하고
      너무나 쉽게 당연하게 일탈의 삶, 무책임한 성도의 삶, 게으름 등등
      똑같다.
      사람의 편에서는 상대적차이는 있을지언정
      하나님편에서는 똑같다.
      나도 실수 할 수 있다.
      여전히 실수 한다.
      실수한 다음이 더 중요하다.
      죄 짓지 않는 것이 최선이나 죄 지은 후 어떻게 할 것인가?
      최선이면 더 좋으나 차선에 대해서도
      분명한 성도의 태도가 있어야 한다.
      반복된 나쁜습관이나 태도, 말이나 실수.
      하루 하루를 되돌아보며 꼼꼼히 기록하고 지워나가는
      삶의 결단이 필요하지 싶다.
      그러나 안 하려는 애씀보다
      내 안에 거룩함을 가득 담아 죄악은 생각나지도 않도록
      할 수 있다면 그게 좋겠다.
      그게 좋겠다.


      [한치의 오차도 없은 하나님의 역사]

      9절,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란 어떤 뜻의 말씀인가?
      스가랴 11;12~13절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그들에게 리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드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이 말씀을 유다가 이룬 것이라는 말씀이다.
      유다는 예언된 길을 걸어갔다.
      꼭 유다이어서가 아니라 유다와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유다이다.
      그러니 불쌍하다 여길 이유는 없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의식을 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펼쳐가고 계신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신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죄악이었다. 신성모독이었다.
      그러니 돌로 쳐 죽일 권한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간음한 여인처럼 말이다.
      그런데 왜 십자가에 죽이려 혈안이 되었는가?

      신면기 21;23절은 나무에 달린자는 하나님께 저주 받았느리라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죽으셔야,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 받은 인생이 됨을 공포하는 일이 된다.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빌라도는 종교적인 의도가 있음을 알았기에
      그 일에서 피하고 싶었을게다.
      그러나 진리가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안에서 유리당하고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신다.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의 상징이었으나
      주님은 저주를 구원과 부활의 표징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불의한 인간들에 의해 행악자로 몰려
      십자가에 능욕당하시기까지 참으심으로
      그 길 벗어나기 않는 까닭에 못 박은자들까지 용서할 수 있으셨던 것도
      한치의 오차없이 역사하신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 매 순간 중단됨 없이 진행된다.
      그것을 믿을때만이 어떤 조건에서도 소망이 있다.


      →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기

      유다와 베드로를 비교할때마다 나는 유다 같지 않음을 감사했다.
      베드로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거라 여겼다.
      그런데 베드로보다 유다 같은 모습이 더 많다.
      참된 회개란?
      삶으로 증명해 내야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작은 것 하나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신실하게 의식하며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겠다.

      힘들고 지칠때마다
      한치의 오차 없이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해나가심을
      온 몸으로 믿어보자.
      염려는 내려놓고
      하늘, 하나님 한 전 부끄럼없이 맡겨보자.
      나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해보자.
      나머지는 어떻게 이루어가시는지 보는거다.
      우리 새생명공동체에 속한 모든 분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 느헤미야강 16-03-24
      '한곁같은 사람'.
      말씀묵상에도 한결같고, 믿은지키는 자리에도 한결같으며
      무엇보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모습이 한결같아 늘 든든한 힘이 됩니다.
      어떻게 그런 묵상과 적용을 할 수 있을까?
      오늘 새벽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우린 믿는 자로서 세상사람들과 반대로,
      주님의 일을 할때 단합이 잘되며,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 하는 새생명교회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도하고 헌신하는 일에,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봉사하고 수고하는 일에
      단합이 잘되고 내가 먼저하겠다고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하는...
      험담과 비아냥과 수군거림과 비평에 단합하는 세상사람들과 같지 않는 새생명교회!

      묵상에 힘이 되고 도전되며, 저부터도 그래야겠다 또 다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