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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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3장_성경이 말하는 바른 기도

  • 느헤미야강
  • 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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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새벽기도회

 

성경이 말하는 바른기도 <살전 3;9-13>


오늘 말씀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곧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이 세워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이런 기도를 하면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곧 자녀들이 잘 되고, 세상에서 복받는 그런 기도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자리에 나오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기도를 하자하면 잘 참석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기도를 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성도라면 믿음에 부요하여야 하는데 그러한 기도는 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7절에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하여야 합니까?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식을 듣고서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며

어떻게 하나님께 보답할까 라고 말하고는 기도로 나아갑니다.

살전3:10절을 보면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주야로 심히 간구하는데 그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먼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만나 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살전 2;18절에 사단이 가는 것을 막고 있음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간절히 주야로 기도하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만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주야로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것들입니까? 없어질 것들입니까?

과연 믿음에 부요하기를 주야로 간구하고 있는가?

무슨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믿음에 부요하여 지기를 소원하고 있는가?

바울 사도의 기도의 목적이 우리의 기도의 목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간구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바로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11).

바울이 그냥 바로 가려고 한다고 해서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전2;18절에는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단이 막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는 우리 역시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합니다.

기도란 내 뜻대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하리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것을 하리라고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내 뜻과 내 주장과 내 고집을 앞세워 놓고서는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합니다.

그 주장과 뜻들이 주님의 마음에 합한 것인가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하는 것은

사사로운 볼일이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부요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거야.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둘째로, 12절에서 성도의 사랑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성도를 사랑한 것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끼리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성도와 성도간의 사랑이 풍성하여지고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서도 사랑이 풍성하여 지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에 근거합니다.

바울 자신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랑을 받은 그 사랑을 받았기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러한 사랑을 받은 자들은 또한 서로

사랑하고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까지 사랑이 풍성하여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우리 안에서도 이러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 안에 사랑이 풍성하고 넘쳐나기를 기도하고,

서로 말씀으로 위로하고 말씀으로 세워가는 그러한 사랑이 풍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풍성하여 지려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날마다 더 깊이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내 마음에 주가 되어 있고 예수님은 우리의 시중이나 드는

그러한 분으로서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이나,

어렵고 힘 드는 일을 떠넘기는 식의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이 깨어지고 부수어 져야 하는데

기도하였다고 하나님께 떠 넘겨 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자신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이것은 기도했다는 것으로 핑계대고 자신은 도망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주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주로 계시게 하시기를 간구하면서

우리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만히 알아감으로 성도가 서로 사랑하게 되며,

이러한 사랑을 우리가 입었기에 모든 사람을 대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바울 사도의 기도입니다.

 

세 번째, 13절 거룩하고 흠없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바울은 성도의 사랑이 풍성하여 짐으로 너희 마음을 굳게 하고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흠이 없게 하시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기도와 같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에,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흠이 없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에게 구해야 할 기도제목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임에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피차간에 사랑하고 흘려 보내는 일,

다시 오실 소망을 품고 거룩함으로 자신을 세워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고 이를 위해 주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더 첨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는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