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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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7장_낙심한자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 느헤미야강
  • 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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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30() 새벽기도회

 

낙심한자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방법 <고후 7;4-7>

 

고린도후서 5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도직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죄 상태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되는 것,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7;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담대한 것도 많다는 말은 고린도교회와 성도를 향해

거리낌없이 할 말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거리낌없이 한 말이 정죄하기 위한 것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을 책망하려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에도 말하였거니와,

여러분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것입니다.”(3, 새번역)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교회를 한 지체로 규정하고,

그리스도안에서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네가 바르게 사는 것이 내가 바르게 사는 것이고,

네가 허무하게 죽으면 나도 죽는 것이다.

너와 내가 하나이니 바른 권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4,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새번역은 여러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로 번역했습니다.

바울이 2차선교시 고린도를 방문했습니다.

우상과 향락의 도시, 밤의 도시인 그곳에 교회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할때마다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 저분은 믿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믿으셨어.

그래 저분은 가족이 그렇게 핍박했는데로 예배에 참석했지.

그래 저분은 그렇게 어려운 형편이었는데도

최선을 다했고 말씀대로 살려고 했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랑거리 였을 것입니다.

비록 거짓교사에게 넘어가 바울을 공격했어도

바울은 그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바울의 사도직 목적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화목의 전제는 인간이 하나님과 불화한 상태인것입니다.

화목하라는 말은 너희들은 하나님에게 배신자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으로 자기네들이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 착각하는 사람에게 배신자라고 한 것입니다.

환란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친다고 고백했습니다.

위로가 가득하다’. ‘기쁨이 넘친다’.

가득하다, 넘친다는 다 수동태입니다.

위로와 기쁨의 주체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다.

주님 때문에 위로와 기쁨이 넘친다는 말입니다.

 

환란속에서 기쁨이 흘러넘치는가?

5절입니다. 우리가 앞에 왜냐하면이 생략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이 말씀은 고린도후서 2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후2;12절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갑니다.

드로아에 복음을 영접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드로아에 머물지 않고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바울이 2차전도에서 고린도교회를 세웠습니다.

3차선교에서 에베소에 있을 때 고린도교회의 분열소식을 듣습니다.

디모데편에 고린도전서를 써 보냅니다.

디모데 보고 바울친서 보고도 바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추천서 이력서도 없는 사람이다. 예수를 만난적도 없는 사람이다.

거짓사도들이 교인들을 세뇌했습니다.

바울인 잠깐 눈물의 방문을 했으나 해결되지 않자

서둘러 에베소로 돌아와 눈물의 편지를 디도편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 디도가 오지 않다 복음의 문이 열렸음에도

작별하고 마게도냐고 갔습니다.

디도를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마게도냐에 이르러서도 육체가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고후2;13절을 보면 마게도냐에 가서도 당장 만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몸, 마음이 편치 못할때가 있었습니다.

사방 환난, 박으로 다툼, 안으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마게도냐에서도 환난이 있었습니다.

밖으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안으로는 두려움이라는 영적 싸움이 있었습니다.

내면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마게도냐에 갔는데 디모를 못 만나나니

내적 불안,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근심, 걱정, 불안속에 있을 때 디도가 나타났습니다.

디도를 보는데 하나님의 위로가 쏟아져들어오는 것입니다.

7절 디도를 만난것도 기쁩니다.

디도가 보고하기를 디도편에 보낸 편지가

고린도교회 교회 성도들이 회개, 애통하고, 열정을 가지고

바울이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진리의 사람인지 알고

회개하고, 회복되었으며, 바른 열심을 갖게 되었다.

그 소식으로 기쁨이 더 커진것입니다.

 

본문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바울같은 위대한 신앙인도 하나님과 함께 하심 알고도

불안할 때 두려워할때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내적 불안과 근심을 어떻게 탈출했는가?

다른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귀로 듣고

내 눈으로 보면서 극복했습니다.

바울도 때로 자기 불안속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

그 하나님을 지금 내게도 함께 하심을 보고

불안, 근심으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성도의 거룩한 교제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믿은 사람들의 모임, 사람 자체가 교회이나,

혼자서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함께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서

저 형제 자매속에서 역사하시는 것 볼 때 내 불안 상황속에서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인 것 알고 피차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같이 힘들때가 없습니다.

남모르는 불안, 근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내 형제의 삶속에 내 자매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내 삶속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의 위로 주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