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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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8장_거룩한 근심이 있는자의 삶

  • 느헤미야강
  •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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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1() 새벽기도회

 

거룩한 근심이 있는 자의 삶 <고후8;1-7>

 

바울은 사도직 목적이 하나님과 화평케 하는 것입니다.

7장에는 바울의 편지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케 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하고 바른 열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가?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가?

이런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7;11절에 하나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간절함과 두려움,

사모함과 열심, 깨끗케 함 등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거룩한 근심이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앞에서 경외, 두려움, 근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두려움 느낀적 없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시편 6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사건이후 죄 깨닫을 때 고백했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분노와 책망하심에 대한 두려움. 뼈가 떨리고, 영혼까지 떨린다, 밤마다 탄식 눈물이 침상을 적시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향한 거룩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앞에서 우리로 하여금 바로 서게 합니다.

 

왕상 2장에서 다윗이 죽는데 1장 이야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왕이 나이들면 어린여자를 넣어 몸을 따듯하게 해줍니다.

그 일 위해 아리따운 여인을 구해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중은 받았으나 잠자리를 같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구절을 왜 기록했을까요?

다윗은 예전에 여자 때문에 큰 죄 짓고 실족했던 다윗이

죽을때까지 여인 때문에 실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뼈 떨리는 두려움, 거룩한 근심때문이었습니다.

영혼까지 떨리는 경험이 없었다면 매일 똑같은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이래서 거룩한 근심은 내 삶을 하나님앞에 바르게 살게 해줍니다.

거룩한 근심에 빠져본 사람은 자기 삶 전반에 걸쳐 성결케 됩니다.

 

이렇게 고린도교회 성도가 거룩한 근심가운데 있고,

범사에 신뢰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바울은 8-9장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구제, 연보에 대한 권면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분열하고 어긋나 있을 때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바로 섰을 때 동역자로 보고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글라우디오 황제때 예루살렘에 극심한 기근이 있어,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곤고함가운데 있게 되자 도와주자 했습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친구들이 많은 것, 가진 소유가 넉넉한 것일까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동역자로 생각해줄때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여러분을 몇 사람이나 동역자로 생각합니까?

나를 만나서 이야기히고, 담소나누며, 차 한 잔하고 웃고 시간 보냅니다.

그런데 진리에 대해서는 나를 동역자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를 이제 동역자로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하는 일에 고린도교회를 권면하는데

먼저 마게도냐 교회들의 은혜의 역사를 이야기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들!(1)

그리스 북쪽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레아 교회를 말합니다.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한 것은

마게도야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합니다.

그들은 극심한 가난에서 풍성한 연보를 드렸습니다(2).

마게도냐의 여러 교회가 핍박으로 혹독한 가난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극심한 가난속에 있기에 바울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 극심한 어려움 있는 교회를 위해 연보를 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너희들이 먼저 주면 내가 흔들어 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먼저 줄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먼저 주면 하나님이 채우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먼저 주라 하신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갈릴리 달동네 가난한 사람들을 앉혀 놓고 하신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이 온 두 벌 있으면 나누라 한 대상이 누구입니까?

사회 지도층이 아니라 삶이 팍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에게 받으려 말고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적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여유있든지 핍절한 것과 상관없이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누군가와 나누어야 함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을 훈련시키는 곳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어렵다도 누구에게 요청한 것이 없습니다.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 자기 어려운때에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풍성한 연보를 했습니다.

 

연보하플로테스’(), ‘관대하다는 뜻입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베푸는 것은 관대함입니다.

신약성경에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도론’(), 선물, 예물입니다.

바울은 헌금이 아니라 사람에게 관대함으로 나누는 연보를 말합니다.

2,000년전이나 오늘이나 하나님께는 나름대로 잘 바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인색합니다. 그때나 지금도 동일합니다.

 

3, 마게도니아 교인들은 힘대로,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드렸습니다.

4,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심히) 간절히 청하였습니다.”(고후8;4, 새번역)

4, 간절히 앞에 (심히)가 있습니다. 구제, 연보하는 것을 자원해서 그렇게 하게 해 달라고 심히 간절히 요청했다는 말입니다.

5, ‘바라던 것뿐 아니라는 말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입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풍성한 연보를 한 까닭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기때문이라고 합니다.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 그 사람은 마음을 줄 수 있습니다.

내 중심을 주님께 드렸다. 내가 주님 마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 가난한데 내 귀에 더 가난한 예루살렘교회 성도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때 주님 마음가진 사람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 하루에 콩 한알을 먹지만 반쪽 나누라고 맡기신 것이구나.

주님 마음 되면 나 보잘 것 없는데 나 믿으시기에

저 사람들을 내게 맡기시는구나. 감격하며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권면합니다.

너희들은 믿음과 말, 지식, 간절함, 사랑하는 일에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제 구제, 연보에도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들이요,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들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대함으로 나눌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동역자로 부르심 받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도, 이웃에게도 나누는 일로 행복한 동역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