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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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1장_자랑하려면 바울처럼

  • 느헤미야강
  • 201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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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새벽기도회

 

자랑하려면 바울처럼 <고후 11장>

 

고린도후서 10장부터 13장은 거짓교사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내용입니다.

그들을 교회에서 권징할 것을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를 보입니다.

고후11;1절에 바울은 자기 자랑은 어리석은 짓이라 말합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나도 자랑하겠다고 합니다.

왜 자랑이 어리석음인줄 알면서도 자랑하겠다고 합니까?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은 거짓 과장된 자기 자랑을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따지지 않고 현혹당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리석은 자랑에 현혹당했으니 나도 어리석게 자랑할테니 

너희들이 내 말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당시 거짓 사도들이 바울을 몇가지 이유를 들어 공격했습니다.

바울은 말이 부족하다(6). 수고의 댓가를 받지 않았다(7).

반면에 거짓교사들은 고린도의 철학과 웅변술, 수사학으로

무장한 사람들이었기에 말에는 탁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탁월함으로 고린도교회를 현혹했습니다.

또한 당시 큰 철학자들일수록 돈을 많이 받았기에

자신들 또한 과대하게 포장하고 자랑하여 많은 사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자신들에 비해 바울은 말에도, 무보수로 일했으니

참 사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린도교회는 거짓사도들의 말에 현옥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바울은 언변은 부족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지식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합니다(6).

하나님 지식은 사실을 알고 전하는 것이니 화려한 미사어구가 필요 없습니다.

사실을 전하면 그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은 전하려는 사람은 미사어구가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무보수로 사역한 것은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고

고린도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7-9).

이후에도 나는 결코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1원이라도 받으면 거짓교사들이 받은 것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봐라 바울도 받았다하며 자신들을 정당화 할 것이고,

바울이 그동한 행한 것 거짓이라고 할 구실 삼을까 싶어서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화자찬하고 성도를 현혹해도

하나님앞에서 반드시 행한대로 보응받을 것이다(15).

그래서 바울은 신실하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거짓 사도들과는 다른 관점에 자랑을 함으로

자신이 왜 참 사도인지,

고린도교회는 거짓 사도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대합니다.

 

22절에 거짓 사도들이 자신들을 증명했던 것처럼

나도 육체적 혈통으로 히브리인이고,

나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일인이며,

나도 율법전통과 할례를 가진 아브라함의 씨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 구별된 참 사도가 자랑할 것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일군이라는 것 어떻게 밝힙니까?

 

첫째, 고난받은 것을 자랑합니다(23-27).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게 갇히기도 넘치도록 했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했습니다.

사십에 감한 매 39대를 다섯 번 맞았습니다.

돌로 맞아 죽을 뻔했고 세 번 배가 파선했고 1주야를 조난당했습니다.

268번이나 위험을 만났습니다.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27).

당시 배 아니면 걸어가야 하는 전도길을 터키, 소아시아 반도를

길 따라 험산준령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갔습니다.

그 길을 바울 걸어갔습니다.

강도 만나면 빼앗기고 민가가 안나오면 굶어야 합니다.

 

왜 바울이 고난을 자랑합니까?

거짓사도는 고난를 피해 다닙니다.

자기 주머니를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난을 자랑합니다.

바울이 어떻게 고난을 당할 수 있었습니까?

바울은 부르심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인 동시에

사도로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진리, 생명 채우시고

네가 가라. 주님이 보내셨기에 고통, 추위, 위험있어도 가는 것입니다.

거짓사도는 주님이 부르신적도 보내신적도 없습니다.

반면에 거짓 사도는 자기 유익을 위해서 가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는 돈 많고 부유합니다.

그곳에 가면 득 될 것 알고 간 사람들입니다.

고난길 갈 이유가 없습니다.

 

두 번째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입니다(28)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고린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어느교회가 흔들린다는 소식에 내 마음이 애가탔다.

그게 바울의 자랑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으로 해산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짓교사는 자기 유익을 위해 교회를 허물어트리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바울은 약함을 자랑했습니다(30)

바울은, 거짓 선지자들이 자랑할 수 없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거짓사도는 자화자찬이유가 자기가 큰 사람되기 위해,

이들 자기 약한 것 말 못합니다.

그들이 자랑할 수 없는 약한 것을 자랑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나 형편없는 자인데 내가 행하는 것은 주님이 행한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사도가 갖는 무게가 있습니다.

하나님 대리인, 모세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는 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32,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예수가 메시아이다는 복음을 전할 때

죽음의 위협이 있게 되자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목숨을 구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 기억 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체면 생각한다면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내용입니다.

나는 살기위해 이런 일 까지한 사람이다.

나는 이것을 자랑한다.

그러니 이런 내가 어떤 일을 한 것은 다 주님이 한 일이다.

주님 자랑하려니 자기 약한 것이 자랑거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11장 본문을 통해서 세 가지를 깨닫습니다.

첫째,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감수했다.

주님 부르시고 보내셨기에 주님 보낸 길 위에

어떤 위험도 피하지 않았다.

둘째, 주님 몸 된 교회위해 염려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자기를 동일시 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면 자기도 세워지는 것이고

무너지면 자기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셋째,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쥐구멍 같은데로 빠져나와 도망갔습니다.

이런 바울 새역사도구로 쓰셔야만 하지 않았겠습니까?

로마제국 역사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불이익 당하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오.

내 방법, 내 이익 얻는 것은

우리 코 끗에 호흡이 끝나면 내것 아닙니다.

남아 있는 사람에게 화근이 됩니다.

내가 복음따라가 가다가 불이익, 손해 볼 수 있는 것은

행위대로 갚으시는 하나님나라에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 상급키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나로 인해 교회 동일시, 든든히 세워 초석될 때

우리 삶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약함을 자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들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때에 행함대로 갚으시는 바울의 믿음이

우리안에도 가득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