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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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3장_율법인가, 믿음인가

  • 느헤미야강
  • 201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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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1() 새벽기도회

 

율법인가, 믿음인가 <갈라디아서 3;1-9>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문제는 죽음의 문제와 더불어

내가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죽음과 구원을 이야기할 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고,

그 결과 모든 고통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증언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할 때,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번째 길은 율법입니다.

이 길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 죄를 이기고,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길은 믿음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죽음,

그리고 온갖 고통과 저주에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구원자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고 말합니다.

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고 믿으면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세상은 종교화 철학, 사람들의 노력, 선한 행위와 올바른 규율을

지킴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무릇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10)

율법의 행위,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저주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율법의 목적이 사람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 자체는 완전하기에 누구나 완전히 지킬 수 있으면

율법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613개의 율법 중에 이 십계명과 같은 10가지도

나는 완전히 지켰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율법은 계속적으로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늘 죄의식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다.”라고 선포합니다.

 

본문 11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성경은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절망에 빠진 우리 인생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해답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13)

예수님이 십자가, 곧 나무에 달려 죽은 것은

저와 여러분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해답입니다.

율법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당할 저주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스란히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을 그 율법의 저주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믿음은 이 십자가사건과 우리 자신을 하나로 묶습니다.

누구든지 이 십자가를 나(자신)를 위한 것임을 믿으면”,

(자신)에게 임하는 율법의 저주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집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2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이라

이렇게 믿음이 중요한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보다

율법의 길, 율법의 행위를 선택합니다.

사람들의 본성 속에 있는 공로사상 때문입니다.

공로사상이란 내 힘으로, 내 공로로 죄를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면 내가 지은 죄보다

공력을 더 쌓으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 공로사상이 사람들에겐 더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보다 율법을 더 선호합니다.

그에 비해, 믿음이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한 번도 만나보지도 못하였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분이 나를 위해서 죽었다?’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았다?’

이게, 잘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가?

내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데...’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보다는 율법을 따라갑니다.

심지어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1절부터 3절이 그 내용입니다.

바울에게 직접 복음을 받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도

이렇게 쉽게 율법의 행위로 되돌아가 갔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옛 자아는 여전히 자기 공로를 추구하고,

율법의 행위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역사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믿음보다는 공로의식이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느냐?’

얼마나 오래 교회 다녔느냐?’

직분이 무엇이냐?’ 를 자꾸 묻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의 행위라는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이래서는 안 되고, 저렇게 해야 되고...’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렸고...’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율법의 잣대로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믿음으로 복 받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보고 그를 의롭게 여겨주셨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따르는 자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삼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7)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믿음으로 누리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내가 애쓰고 수고해서 얻었다는 것은 내 노력의 대가이고

율법의 행위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지만,

나 대신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저주를 해결해주신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주, 나의 구원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그렇게 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구원을 확증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 앞에 놀라운 믿음의 세계를 열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율법의 행위를 따르지 말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둘 중의 하나, 율법의 행위를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믿음의 길로 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모든 율법의 저주를 주님께서 다 담당하셨다는 것이 믿어지시면

그 사람은 율법의 저주, 세상의 온갖 저주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을 믿고,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따라 살겠다고 결단하시소 살게될때에

그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저주는 이미 끝났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어도,

몸이 병들어 아플 수 있고, 여전히 가난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병들고 가난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언제나 행복하고 감사함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 주님

그리스도 예수만을 바라보고, 그분을 더 사랑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의 복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