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갈 4장_다시 해산하는 수고

  • 느헤미야강
  •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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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4() 새벽기도회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4;12-20 중심으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전도하고 예수 믿게 하는 것을 복음으로 낳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할 때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다’(고전4:15)라고 말했습니다.

육신의 자녀를 출산하는데에 많은 고생과 어려움이 따르듯이

죄와 마귀에게 사로잡힌 영혼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영적 출생에도 동일한 해산의 고통이 따릅니다.

산모가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피까지 쏟아야 한 생명이 탄생되듯이,

한 생명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는 전도에도 동일하게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하고,

땀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말을 잘하고 성경지식이 많다고 전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의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으로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하고그 사람이 구원받도록 사랑의 수고를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최고의 전도전략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부흥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교회 부흥은 어느 날 저절로, 우연히 되는것이 아닙니다.

부흥에는 늘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해산의 수고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은 부흥을 부어주십니다.

해산의 수고로 탄생한 교회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그 지역에 교회를 세운 것이 마치 해산의 수고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산의 위험과 강의 위험이 있는 곳이었고수많은 반대와 박해를 받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심지어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복음을 전한 것은 정말 해산의 수고를 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께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유대 할례주의자들에게 미혹되어

복음으로 자유케 되는 기쁨을 알고서도 복음에서 이탈하게 되고

다시 율법주의로 되돌아가는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갈3;1절에 갈리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복음의 진리를 이탈하고,

주님이 주신 구원의 기쁨과 감동을 잃어버린 버린 그들이 어리석다고 표현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할례주의자들의 실체를 제대로 보라고 권고합니다.

17절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함이라

할례주의자들이 열심을 냈는데 그리스도를 위한 열심히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을 얻어서, 자기편을 만들고,

그리고는 사도 바울과 그들을 이간시켰다는 거였습니다.

 

이것을 안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한 새로운 결심을 밝혔습니다19, 20절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여기에서 사도바울은 다른 복음 때문에 갈팡질팡하고 있는 갈라디아 지역의 성도들을 위해 

복음으로 그들을 지켜내기 위해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잃어버리게 되면하나님의 역사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라는 말입니다.

이 구절을 헬라어로 직역하면너희 속에 그리스도가 만들어질 때까지가 됩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만들어지도록그렇게 될 때까지 수고하겠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같기는 한데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들 안에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도록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만들어져야’ 그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 한 분으로 만족하고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하다.’ ‘예수가 다다’,

십자가면 전부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오늘 말씀을 통한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누군가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가 있었으나 믿음의 길에서 낙심한 이들을 위하여,

복음의 진리앞에 서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내가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할 성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해산하고, 말씀으로 해산할 지체가 없습니까?

고민하고 그들을 다시 품고 기도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한 심령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마음으로 수고하는가?

한 번의 수고가 헛되었을 때 그 해산의 수고를 되풀이할 의향이 있는가?

성도를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수고과 소망의 끊을 놓치 않고

많은 일들 가운데 피곤함을 무릎쓰고 예배당으로

기도자리로 달려가 기도한 적이 몇 번 있었는가?

날마다 고민하고 영적 아비로서의 사명도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영적 자식을 낳는 일에도 해산의 수고가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아니라 그 심령안에 그리스도가 그 안에 꽉 차기까지

또 진통하는 바울처럼 주님의 사랑을 본 받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감사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리고 우리 새생명교회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사도 바울처럼 교회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해보지 않겠습니까?

올 한해 나의 이웃들이 구원받도록, 같이 수고하고, 전도대상자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랑의 수고를 해보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 새생명교회가 해산의 수고가 많고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