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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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5장_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느헤미야강
  •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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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5() 새벽기도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5;2-6중심으로>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 때에 갈라디아 지역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예수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지역을 떠나자,

유대인들은 믿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라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갈라디아 지역의 성도들은

이 두 가지 길에 서서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할례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로 만족할 것인가?’,

율법 아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은혜 안에 있을 것인가?’,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다시 복음의 진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갈라디어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사실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는데 만약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서

할례를 받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절부터 4절까지가 그 내용입니다.

첫째, 그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할례를 받는 것은, 그 사람이 유대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과거 유대인들이 지켜왔던 것처럼

모든 율법의 규정을 다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만약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

율법의 저주아래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설명했습니다.

 

둘째로 그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될 것이라고 바울은 경고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서 할례를 받겠다면,

그것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가 필요 없다고 말이고,

십자가도 필요 없다는 말이고,

결국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할례를 받고, 율법의 행위로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겠습니까?

그러니 할례를 받고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율법의 행위은혜는 반대개념입니다.

율법은 자기 힘, 자기 노력으로 의롭다 함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룬 업적과 자기의 종교적인 노력과

자신의 공덕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자기 자신이 소망 없는 죄인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마지막까지

의의 소망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얻은 의는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의 의가 완전히 인정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 그 심판대 앞에 섰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를 날마다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궁극적으로 의롭다함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망기다리면서

이 땅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 삶이 아니라, 

구원받았으니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

 

바울이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믿음은 우리가 입으로 그냥 믿습니다라고 말만하면 되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믿음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사랑과 선행을 생산하는믿음,

혹은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입니다.

 

믿음에도 가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 진짜믿음이라면,

사랑이 없이, 입으로만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가짜믿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습니다.’ ‘할렐루야. 아멘소리쳐도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보시고,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는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목사가 설교도 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치고,

권능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였는가?’,

믿는다고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았느냐?’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속지 않습니다.

주여 주여라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만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2:14)

진정한 믿음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믿음이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진짜 회개, 진짜 믿음은

반드시 선행(good works)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 선행(good works)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혼을 위한 선행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몸을 위한 선행입니다.

영혼을 위한 선행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

그리고 병든 영혼들을 예배와 말씀으로 치유하는 것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또 그들을 예배의 자리에 초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격려한다면

그것은 영혼을 위한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을 위한 선행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배고프고 헐벗은 자들, 갇힌 자들을 돌보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병든 자를 찾아가고,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들에게 입을 옷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몸을 위한 선행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분명한 복음의 진리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은 사랑과 선행을 생산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믿음 역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사랑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 자들의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믿음의 사람은 죄인이었던 나를 위해 십자가 은혜를 입었으니

자유함을 입고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해인 수녀가 쓴 내 나이 가을에서야라는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젊었을 적/ 내 향기가 너무 짙어서/ 남의 향기를 맡을 줄 몰랐습니다.

내 밥그릇이 가득차서/ 남의 밥그릇이 빈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에 갈한 마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퇴색의 계절/ 반짝 반짝 윤이 나고 풍성했던/

나의 가진 것들이 바래고/ 향기도 옅어 지면서/

은은히 풍겨오는 다른 이의 향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고픈 이들의 빈 소리도 들려옵니다.

목마른 이의 갈라지고 터진 마음도 보입니다.

이제서야 보이는/ 이제서야 들리는/ 내 삶의 늦은 깨달음.!

이제는/ 은은한 국화꽃 향기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밥그릇 보다/ 빈 밥그릇을 먼저 채우겠습니다

받은 사랑 잘 키워서/ 풍성히 나눠 드리겠습니다

내 나이 가을에/ 겸손의 언어로 채우겠습니다.

 

이제서야 들리는 늦은 깨달음으로 후회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내 밥그릇보다 빈 밥그릇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복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