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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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장_생명의 족보, 죽음의 족보

  • 느헤미야강
  •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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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8() 새벽기도회

 

생명의 족보, 죽음의 족보 (5)

 

창세기 5장은 아담의 족보이야기입니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이르는 족보입니다.

3절을 보면, 아담장자에 가인이 나오지 않고 셋이 족보를 형성합니다.

4장에서 가인은 인류 문명사 족보를 소개합니다.

곧 가인은 영적 족보에서 제외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아담 족보에는 셋이 들어가고 이 족보가 그리스도 족보가 됩니다.

세상 명문가 족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생명의 족보에 연결되어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2,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사람이라 부르셨습니다.

남자는 아담, 여자는 하와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라 부르셨다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기대대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육신은 땅의 것을 먹고, 영혼은 말씀과 기도를 먹고 삽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됩니다.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많은 자녀가 성경에 족보로, 구원사에 등장합니다.

필요한 세 사람만 소개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5장 족보의 특징은 모든 사람이 자녀를 낳고 몇 살에 죽었더라고 소개합니다.

하나같이 죽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8번 등장합니다.

아담, 하와의 죄 결과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삶이 가능했던 에덴동산을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나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분리가 생겼습니다.

소망없는 존재가 되었습닌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다시 만나고, 죽음이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는 길이 있는데,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입니다. 바로, 예수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것을 소개해주는 것이 마태복음 1장 족보입니다.

낳고 낳고를 강조합니다. 생명만 나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예수 안에서 생명을 낳고 살게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첫째 아담으로는 죽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님으로 인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여러분안에 그리스도 있으십니까?

그러면 땅에 속해 있으나 하늘 생명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삶속에 누구를 만나든, 나누는 이야기가 내가 전에는 죽을 존재였는데

예수만나 살게 되었다는 간증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5장은 죽음의 족보입니다. 누구나 죽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 읽을때마다 묵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살게 되었지만 근원적으로 죽음을 알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살았다는 것은 그 만큼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죽으면 제일먼저 산 사람이 코를 막습니다.

나를 산 사람으로부터 격리시킵니다.

병원에서는 영안실에 안치시키고, 집이라면 병풍을 쳐 놓습니다.

죽으면 나를 품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수의를 입습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호흡이 끝나면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내 소유였던 것은 남은 사람이 뭘하든 아무것도 관여할 수 없습니다.

밀란 쿤테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한 것이 이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관에 넣고 흙을 붙고 덮습니다.

이제 절대 살아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관에 덮여 있는 내가 다시 살아나면 안됩니다.

지금 산 사람이 계산 다 끝낸것이니 살아나면 안됩니다.

코 막고, 귀 막고, 숨 쉬지 못하게 했습니다.

가져 갈까봐 주머니도 없앴습니다.

살아갈까봐 살아나지 말라고 흙으로 덮고 밟습니다.

 

어느날 병원에서 남편 사망선고를 내렸습니다.

가족들이 곡하며 울었습니다. 그 순간 남편이 눈을 떴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손을 툭치며 그러더랍니다.

여보 의사 선생님이 운명하셨다고 했잖아! 그러더랍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내 욕심대로 산다면,

그런 내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면 반길 사람 몇 있을까요?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내가 살아나는 것 반길까 매일 매일 자각하며 사는 삶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루 하루를 생명있게 살게 됩니다.

 

아벨이 죽은 후 셋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다른 씨입니다.

가인과는 다른 씨라는 것입니다. 이후 가인, 셋 계열로 두 역사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죄 결과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 5;3절은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셋은 아담형상으로 지음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죄로 인해 불완전한 형상이 대물림되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씨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셋 후손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가인후손, 셋 후손이 다 육체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 두 인류의 끝이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죽음이 아닌 것이 다릅니다.

가인의 씨는 영원한 죽음, , 다른 씨는 끝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장 족보, 낳고 낳고를 강조하는 것을 생명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영원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살게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