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특새(3) 온유한 자는_마5;5

  • 느헤미야강
  •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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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4() 특별새벽기도회

 

온유한 자(5;5)

 

오늘은 팔복 세 번째 말씀입니다.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세상을 보다 눈에 잘 띄는 영웅적인 존재에 열광합니다.

자신의 지위, 권리, 입장을 회보가고 지키는 강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온유란 무엇인가?

온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프라우스스 인데 야생마와 같은 짐승을

길들이거나 짐승이 화나거나 흥분할 때 진정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중세시대 전쟁시에 타는 말은 집에서 키운 온순한 말을 사용하지 않고

야생마를 사용합니다. 야생마는 길들여지면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쓰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본능과 충동, 격동 등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훈련된 성품을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말씀한 개념은 더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신약성경 히브리 역본에는 가난한 자온유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다같이 아니입니다.

아니는 첫째로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라는 의미에서 뜻이 변하여 깊은 곤궁과

곤란속에서 겸손하게 여호와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을 뜻합니다.

두 번째 뜻으로 가난한, 억압받는, 괴로움 당하는, 비천한, 겸손함입니다.

이 뜻이 심령이 가난한자에서는 가난이 강조되었고.

온유한 자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겸손이 더 강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온유는 나 자신에 대한 자세인 동시에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자세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야생동물을 길들여 주인의 쓰임새에 맞게 한 개념으로 이해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도 똑같습니다. 바울은 어떻습니까?

초대교회 준비된 지도자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포악하여 그리스도인을 잡아가두고

스데반을 죽이려는데 주동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왜 다른 사람이 아닌 포악한 인간을 쓰십니까?

하나님관점에서 성령안에 다듬어지면

초대교회에서 아름답게 쓰여질 것임을 아셨기때문입이다.

교회에서 누구는 문제가 많아.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

그런 사람들이 뒤집어지면 사도바울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유가 내표하고 있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에 다스려지는 차원에서의 온유가 중요합니다.

 

브라질 아마존에 한달전에 불이 났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불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불이 났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불은 위험합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는 통제되면 유익하지만,

통제되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불보다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여주는 가스레인지가 중요하듯,

통제되지 않은 열정보다,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어 쓰임받는 것이 낫습니다.

야생마인데 훈련되어 주인의 쓰임새에 맞게 길들여지는 것이 온유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온유한 사람인가? 통제되지 않은 사람인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2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성: 내 인생은 하나님의 통제하심이 작동되고 있는가?

오늘날 교회에 통제되지 않는 지도자,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습니다.

선한일을 하는데에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선한의도 있으나 하나님께 통제되지 않으면 불과 같이 위험한 것이 됩니다.

갈라디어 5:22-23절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의 끝은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 둘은 동전양면과 같습니다.

성령 열매속에 온유가 있다는 것이 뭘 의미할까요?

내가 깨달음 얻고 결심해서 온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가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날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만

온유, 절제가 가능합니다.

 

온유: 하나님께 통제받는 삶.

절제: , 가능성. 통치자의 영역안에 있는 것

 

자기절제가 안된다면 내가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9;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자녀로서 성령인도 받는다는 것은 위로, 보호하심 같은

배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간섭하심, 통제하심과 같이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뜻대로 통제받는 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성령의 인도함을 나누어 보면

주로 위로하심, 보호하심만 이야기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의 통제하심 받는 것입니다.

 

사춘기 자녀들의 특징은 부모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동시에 부모의 통제속에 들어가 있음을 뜻합니다.

부모의 인도함을 받는 것은 미성년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여러 가지 필요를 제공받으나 통제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일하게 하나님 인도하심은 위로와 보호함을 받지만, 통제도 받는 것입니다

인도하심의 전제는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간섭과 통제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 인생에 잔소리꾼되는게 좋은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 같이 잔소리꾼 되고 시시콜콜 간섭하십니다.

새벽일찍 일어나고 하루종일 말씀 묵상, 하나님 잔소리 들으려는 것입니다.

큐티는 하나님의 따듯한 잔소리를 듣는 시간입니다.

온유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속에서 그 분의 통제를 받는 것입니다.

 

내 인생, 하나님의 통제 안에서 인도함 받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통제에 대해서 3가지 면에서 점검해야 합니다.

 

1) 나의 감정은 성령님에 의해 통제 되고 있는가?


여러분 감정이 성령님에 의해 통제 되지 않으면 좋은 말로 해도 독이됩니다

좋은말인데 통제되지 않은 감정에서 독이 흘러나옵니다.

또한 통제 되지 않은 감정에 같이 맞서면 사단이 춤을 춥니다.

여러분의 감정은 성령님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까?

 

2) 내 입술의 언어가 성령님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가?


우리의 입술과 혀, 언어 자체가 야생마 같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길들여지지 안은 것 하나 고르라면 바로 입술, 언어입니다.

여러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통제되고 절제되지 않는 말들이

나오는 것을 압니다. 부부 싸움 할때 통제안된 언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성령님게 가장 통제되어야 할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통제되지 안은 아무리 좋은말도 하나님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그곳에 담겨 나오는 말이 통제된 입술입니다.

 

찬양.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네

 

열납은 기쁘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헌금만 열납이 아닙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 마음이 묵상도 열납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의 말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의 말이 열납되는 산제물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러면 입술이 성령의 통제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마음이 통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니 내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다 말이 아닙니다.

부부, 자녀, 어른들에게 말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님들사이에서도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 통제되는 말로 가야 합니다.

 

3) 나의 물질적 탐욕이 성령님에 의해 통제 되고 있는가


구약의 이스라엘, 광야생활을 할 때 만나를 주셨습니다.

16;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늘 만나를 비같이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유통기한이 하루입니다.

하루면 하루치만 주시지 왜 양식을 비같이 내리셨을까요?

광야의 만나는 순종훈련과 절제훈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자족훈련 하는 것입니다.

비같이 내려주니 일주일, 일년, 십년치 거둘 수 있지만

나는 하루치 가져가겠다.

주기도문,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정신이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쓰고 쓰고 남은 것은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 탐욕이 성령님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가?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는 내 인생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사람과의 관계성: 그것이 사람들에게 온유로 나타나는가?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12;3 “모세로 말하자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새번역)

이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12;1,2을 보면 모세가 구스여인과 결혼을 하자 미리암이 비방을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시냐?

누이, 형 아론이 조롱하고 비방했습니다.

모세는 일절 반응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땅의 통치자요,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모세 성숙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미리암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병에 걸립니다.

12;13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감정대로 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꼴좋다 그렇게 비방하더니 그것은 온유가 아닙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한 죄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돌로 쳐죽였습니다.

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것이 온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이 온유가 있습니까?

이 온유는 결단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성령안에서 가능합니다.

 

 

3. 온유한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시편 37: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여기에서의 기업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와 다스림이 있는 땅입니다.

시편 37편 말씀처럼 온유한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할 때

이것을 현실화시킨 사람이 온유한 자 모세이고, 여호수아입니다.

진정한 통치권과 정복은 온유와 하나님게 대한 충성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유대인들이 가진 메시야 사상은 물질적, 군사적 천국관을

가지고 있었고. 메시야가 이것을 이루어줄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유하라 그러면 참으로 땅을 소유할 것이다.

가이사랴의 총독관저에 빌라도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사고방식과 크게 대조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싸우기 위하여 어떤 조직이나 행정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방식,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있는

땅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온유함 이어야 합니다.

온유한 자들은 그들의 조직을 의지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세력과 능력과 제도와 물량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물질적 의미에서 우리가 땅을 소유하고 있다 해도

거기에 어떤 실질 적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땅의 평수로 측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풍요로운 외적 조건, 탐욕의 꿈을 한껏 충족시킨 부요,

슬픔의 아픔을 초월 한 재물은, 어떤 사람에게든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온전한 지복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세상이 알고 있는

어떤 초라한 행복조차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온유한 사람들도 이와 같이 살아가며 이를 통해 번영을 누립니다.

비록 지상적 소유물은 매우 적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 지상적 이득을 진정한 차원에서 소유하므로 행복합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만족하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4 : 11 이하).


온유한 사람들은 비록 단 한 뼘의 땅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현재 땅을 상속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자들은 세상을 소유한거나 다름없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표현 해서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라고 했습니다.

지상은 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며,

그들은 지상에서 하나님 을 뵈옵고 그들에게 있어 지상은 섬김의 장이요

인격적 성장의 수단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이 약속에는 미래에 있을

또 하나의 성취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형태의 하나님 나라가 새롭게 된 땅,

'의가 거하는 새 땅'에서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죄를 인식하고 애통해하며 온유하게 사는 자들,

그리스도의 용서와 정화의 위로를 유일한 소망으로

마음에 온유하게 받아들이는 자들,

온유하게 수용하고 온유하게 참으며 온유하게 순종하는 자들은,

현세에도 광야를 장미처럼 피어나는 희락의 동산으로 만들 것이고,

고요한 평화의 샘을 얻을 것이며,

금후 내 세에 만유에 대한 주권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온유가 이깁니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모든 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21:7).

그래서 마음이 온유한 자들은 마음이 온유한 왕과 함께 통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