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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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8-11 서머나 교회에게

  • 느헤미야강
  •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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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새벽기도회

 

서머나 교회에게 (계시록 2:8-11)

 

오늘은 주님의 편지 두 번째로 서머나 교회에 주신 편지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떻게 세워졌는지 모릅니다.

다만, 사도행전 19장에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3년 가까이 선교사역에

온 정성을 기울였던 바울 선교의 한 열매라고 추측할뿐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신앙이 건전한 교회였고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는 질책과 책망의 글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위로와 격려 그리고 믿음으로 이기면주시겠다는 축복의 내용만 있어서입니다.

그렇다고 서머나 교회가 당시에 있었던 박해가 피해 간 것이 아닙니다.

박해의 순간에도 그들이 바라보아야 하는 것, 지켜야 하는 믿음이

그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들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의 문제임을 알게 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처음이요 나중이라!"라고 자신을 다시 소개하신 주님은

또한,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은 죄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은 처음에도 서머나 교회와 함께하셨지만,

마지막에도 함께 하실 분이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서머나 교회에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서머나 교회가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냥 놔두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1세기 당시의 서머나 교회는 한마디로 고난받는 교회였습니다.

고난받는 교회 성도들에게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의 모습보다

더 위로가 되고 더 용기를 주는 이미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고난 중의 최악의 고난은 죽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죽음에서 다시 사셨습니다. 죽음에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바로 죽음의 승리자이시고 역사의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

곧 역사의 주인 되신 분이 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서머나는 예나 지금이나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 교회의 소망은 로마제국의 부요가 아닌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책망이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였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고 순교까지 하는 성도들에게 무슨 책망을 하시겠습니까

다만, 칭찬과 격려를 주실 뿐이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9)

여기서 궁핍은 상대적 가난 정도가 아닌,

거의 헐벗고 굶주린 수준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네가 부요한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에서 고난당하는데 부요한자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인생이 아무리 환난의 연속이어도 그 환난이 환난 당할만한

가치만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주님께서 알아주신다면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사실 참 쉽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게 힘이든데 정말 주님이 알아주시는 것만으로

나는 견딜수 있는가?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는 말씀하지만

정말 그런가? 자문해보면 아닐때가 참 많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 번역한대로, 이 고통을 constant pain,

한 번에 끝나는 고통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통이라면,

과연 주님이 알아주시는 것으로 우리에게 소망이 될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럼에도 교회의 힘은 고난 가운데서 신앙을 지키고,

세상이 아니라 주님이 알아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때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런 신앙의 고백으로 이 찬송을 부른다면 의미는 남 다를 것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러면 서머나 교회가 당한 환난과 궁핍의 내용이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

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9절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이라는 말은 서머나 교회에 닥친 종교적인 환난을 의미합니다.

우상숭배를 거절함으로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그 엄청난 핍박과 고난을 의미합니다.

믿음 생활 잘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핍박과 고난이 그들의 시련이었습니다.

이것을 비추어 볼 때, 실제로 예수를 잘 믿는데,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데 고난을 겪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아닌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의 거룩함을 지키다 당한 고통이 많습니다.

이것은 스티그마 "흔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흔적을 우리 주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궁핍"이라는 말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당한 궁핍함을 의미합니다.

당시 서머나는 물질적으로 매우 풍성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는 황제를 숭배하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권리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숭배를 거절하며

풍성함을 동시에서 누릴 권리란 너무나 제한된 것이었습니다.

가난은 어쩌면 그들이 지닌 흔적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환난과 궁핍을 가진 서머나 교회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실상은 너희가 부유한 자"라는 것입니다.

비록 육신적으로는 너희가 가난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부유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너희가 궁핍하여 마음껏 먹을 수도 없고

마음껏 쓸 수 없어 힘이 들지라도 이런 것은

잠시 잠깐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제 마음속에 그것 가지고 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어떤상황속에서도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이

그 말씀으로 위로를 주셨다면 그것은 최고의 힘이 되었겠구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실상은 부유한 자! 주님 그 한 말씀이면

오늘 살게 하는 능력이 되는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서머나교회를 향한 주님의 권면은 무엇일까요? 10절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저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10)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이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러한 고난과 순교의 일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며 고난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이 "아신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약속하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죽도록 충성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의 관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죽도록이라 함은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이 다가와도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잃으면 다 잃는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디모데후서 4:9-10절에서 데마는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언급합니다.

한때 바울의 동역자였던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충성은 반드시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봐야 압니다.

교회에서 몇 달, 몇 해를 열심히 충성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한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주는 교훈과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한마다로 확실한 신앙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속상하고 복잡해도 지켜내는 것이 믿음이요, 충성입니다.

그렇게 살면 죽을 것 같은데,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입니다.

 

또한, 서머나에서 로마인들,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조차 핍박을 받으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선택받은 자로서의 자존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금의 현실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면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저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둘째 사망이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보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십니다.

고난가운데 신앙을 지키고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모든 편지에서 "내가 아노라!", "지켜 행하라!"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언약의 말씀과 동시에 이길 수 있는 비결도 알려 주십니다.

말씀에서는 "충성", 변치 않는 믿음이 이기는 비결이라고 말씀합니다.

10절에서 "생명의 관", 11절에서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현실의 고난을 이기는 가장 중요한 것은 천국의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기쁨이 충만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