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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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7-13 빌라델비아 교회;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 느헤미야강
  • 20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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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새벽기도회

 

빌라델비아 교회: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계시록 3:7-13>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도시들은 아시아에서 아주 유명한 도시들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빌라델비아는 지진이 많다는 것 이외에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아주 가난한 도시였습니다.

교회도 아주 가난했고 수적으로도 아주 적은 교회였습니다.

또한 빌라델비아에 사는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당했던 교회였습니다.

7번의 큰 지진으로 도시가 거의 황폐하게 되었고

AD17년에 있었던 큰 지진 후에는 도시를 다시 세워야 할 만큼

커다란 타격을 입었습니다.

도시를 재건할 때에 로마 황제의 지원을 받아 도시를 재건했는데,

도시를 재건하고 나서 로마 황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도시의 이름을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New city of caesar) ‘시저에게 바치는 새로운 도시라는

새 이름으로 도시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30여 년 간을 그 이름을 쓰다가 다시 빌라델비아로 이름을 고쳤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는 날까지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었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면 주님께서 이기는 자에게는 그 사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하겠다.’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7절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주님을 거룩하고 진실하신 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표현은 하기오스 호 알레디노스라는 표현은 참 거룩이라는 의미입니다.

거룩하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단어로 생각들을 하는데

사실은 하나님의 신비함과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도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거룩을 가리키는 하기오스라는 같은 단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한 자가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입혀주신 거룩의 옷 때문에 성도라 불립니다.

우리는 거룩한 자로 여김을 받지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입니다.

7절에서 진짜 참 거룩이신 이라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묘사하신 것은

예수님이 바로 그 거룩의 본체이시며 그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그 주님께서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사야서 22;15,20-24에서 인용 된 구절입니다.

... 22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이 이야기는 히스기야 왕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히스기야 왕 때 셉나라는 대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다의 국고를 맡은 막강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의 묘실, 무덤을 파고 그것을 치장하다가

하나님께 호되게 꾸중을 듣고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권세를 엘리야 김에게 넘겨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다윗의 열쇠가 등장합니다.

이 엘리야김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묘사한 단어들은 전부 메시야에

관한 언어들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김을 내 종이라고 부르십니다.

엘리야 김에게 옷을 입히고 띠를 띠워 힘 있게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의 옷을 입게 되는 성도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다윗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열쇠라는 말은 권위와 통치권자를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최후의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그분을 믿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겠습니다.

교회가 능력이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큰 능력을 갖춘 주님이 우리를 믿어주시고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8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작은 능력이라는 말은 "능력이 거의 없다!"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이 사회적인 신분으로도 보잘것없는 미약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를 간절히 사랑하고 섬겼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잘것 없는 존재인데 그런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면 믿음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보다는 우리를 믿어주는 그 믿음이 힘이 아닐까요?

변화된 삶이란? 나를 믿어주는 분에 대한 나의 행동이 아닐까요?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은 책망할 것 없는 칭찬만 있습니다.

본문 8절이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는데 주목해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8절에 나오는 열린 문이라는 단어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는 "사람이 닫거나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이에게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열려 있는 문,

구원의 문인 그 문은 문에 대하여 어떤 인간도 열거나 닫을 권세가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환경과 기회를 탓하지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의 문을 좋은 환경 가운데서 지킨 것이 아닙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

열린 문, 구원의 문에서 이들은 하나님 앞에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

어쩌면 좁은 문을 향해 늘 선택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도 수없이 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면 얻을 수 있는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을 위해 잠시 누리는 낙을 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크리스천의 가장 큰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에, 영생을 얻기 위하여 끝까지

크리스천의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견딘다는 것이 박해시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의 작은 능력을 갖추고 어떻게 믿음의 삶을 선택할 것이냐의

실제적인 문제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렇게 신앙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 10절에서는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인내의 말씀의 뜻은 인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기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상황이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많이 인내해야 할 상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잘 참아낸 것입니다.

인내의 공동체에는 늘 본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열하는 공동체에는 늘 그것을 깨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린 문과 연결하여 본다면 이 모든 가능성이

오늘 우리 교회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에게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환난의 때에 모든 교회와 신앙을 지키지 못한 모든 성도가 수치를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지금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람들이 영적 환난의 때가 오면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수치를 당하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지킨 자들의 특권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을 보면서 제일 부러운 것이 있다면,

존경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때의 일입니다.

미국의 많은 젊은이가 영장을 받고 군에 가게 되었습니다.

큰 도시로 집결하여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갑니다.

워싱턴 역에도 수백 명의 장정이 몰려들었고 시민은 기차역에 나와서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민 가운데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 잔을 받쳐 들고,

어떤 때는 친히 코코아를 끓이기도 하며 늦은 밤까지

봉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장정 하나가 그 노인을 자세히 보니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루즈벨트였습니다.

그는 육체의 불편함에도 밤마다 기차역에서 훈련소를 떠나는 청년들을 위해 뜨거운 코코아를 나르며 봉사를 했습니다.

누군가의 헌신은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은 다음 사람의 삶을 바꿔놓는 힘이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당시 다른 교회에도 그런 선한 영향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선한 영향력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축복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인내했으므로 내가 이제 너희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사도행전2;42,43절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가르침과 교제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쓸때 사람마다

두려워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46,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고

가정에서 교제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더니 온 백성에게 칭송받았다.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경외라고 하는 두려움은 거룩함앞에서 나타나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거룩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성도를 가볍게 보고 멸시하는 것은

거룩함을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인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 때

그것이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두렵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 새생명교회 공동체에도 세상을 두렵게 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말씀하신 것을 지키며 인내했습니다. 그게 영향력아닐까요?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시는 8절 말씀에 다시 한 번 집중해 보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8절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어를 하나 선택하라면 작은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핍박하는 자를 누를 만한 능력이나 힘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작은 것으로 최선을 다한 교회!"입니다.

 

본문 12-13절은 이기는 자, 견디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 기둥은 가장 존귀한 자리입니다.

성전을 떠받치는 힘의 원천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고 작은 능력이라고 했는데,

그 보잘것없는 것을 통해 기둥을 만드신다고 합니다.

그 기둥에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지게 될 것입니다.

새겨진 이름은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끝까지 남겨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작은 자였으나, 영원한 나라에서 존귀한 자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둥 같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명품이 무엇입니까

만든 이의 이름이 새겨지는 순간 명품이 됩니다.

귀 있는 자들은 들으십시오.

비록 여러분의 능력이 부족할지 모르나 끝까지 견디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장 귀하게 쓰시는 때가 틀림없이 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땅에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켜내며

다시오실 주님을 맞이할 것인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심판의 때에 가장 존귀하게 쓰임 받고, 우리의 이름이 새겨지고,

하늘나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 이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에서 믿음을 가지고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죽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삶을 산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죽음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이것이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