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자토새_ 나를 세워 그를 세우시다_삼상3;1-21

  • 느헤미야강
  •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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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0 자녀를위한 토요새벽기도회

 

나를 세워 그를 세우시다(삼상 3;1-21)

  

 

사무엘상을 읽은 관점중 하나는 우리를 잘 세우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삼상3;1,2,3절은 이 시대의 특징이 나옵니다.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하나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안들린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사사시대 자기소견대로 산 시대로 하나님 말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말씀이 없으니 하나님 주신 이상, 비전에 노출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비전 전혀 모르고 자기 생각하는대로만 삽니다.

 

이어 엘리 제사장의 특징이 나옵니다.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제사장으로서 직분만 겨우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제사장 직분을 하나님과의 관계로 수행하는 것이 아닌 업무 수행정도입니다

한 시대와 영적 제사장이 무너졌습니다그런데 소망이 있습니다.

제사장 지파가 아닌 사무엘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말은 소망이 있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세상이 하나님께 관심없고, 영적 지도자가 이 시대의 목회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직업으로만 관심갖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하나님께 드려져 하나님의 법궤 옆에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두 종류의 불모지(barrenness)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불모지는 barren 불임인, 잉태치못하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한나는 육적으로 잉태하지 못했습니다.

엘리는 하나님과 영적 관계를 맺지 못하는 불임인생입니다.

한나는 기도 응답으로 사무엘을 주십니다.

아들 달라고 주시면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불모지에

토양을 바꾸는 사람으로 쓰시는 응답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우리가 알지못하는 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은 기도한 것만이 아니라

기도한 것 그 이상을 주십니다.

한나는 아들을 구했는데 하나님은 아들뿐만아니라

시대를 깨우는 영적 지도자까지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응답인 인생으로 온것입니다.

우리는 병들고 아픔있어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온 인생입니다.

 

말씀이 희귀한 시대. 우리 시대도 말씀없이 살아가는데 익숙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습니다. 익숙합니다. 죄는 어느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을 향한 관심 자체가 없습니다.

14-16세기 르네상스시대는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바뀌게 된 시기입니다.

인간자유, 존엄성, 이성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과 맞물려 있습니다

종교의 부패와 타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무관심하게 했고,

세상 관심사로 드러났습니다. 텔레비전, 재미있습니다.

유익한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요리하는 남자가 유행입니다.

24시간 티비를 보아도 하나도 안 지루합니다. 죄를 짓는 문제가 아닙니다.

행복과 재미를 구합니다. 문제는 하나님 안 찾는는다는 것입니다.

감정, 욕망을 개발, 하나님은 잊혀져 갑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1.

4.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자 제사장 엘리가 부른 줄 알고 갑니다.

6절에 두 번째 하나님이 부르시자 또 엘리에게로 갑니다.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8, 세 번째 하나님이 부르지가 엘리에게 가자

엘리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니 경험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9, 엘 리가 사무엘에게 또 부르시거든

여호와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했습니다.

10, 네 번째 하나님이 부르시자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나님과 사무엘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사람이 만날 때 말씀으로 만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성경적인 모습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가장 확신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어느날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날이 옵니다.

우리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말씀인 성경으로 들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안달한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었습니다. 못 알아들으니 4번씩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듣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드려져 섬기려 했을 뿐입니다.

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려 합니까?

하나님앞에 바르게 서 있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싶어하십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시고 싶으셔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엘리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엘리가 못 들은것일까요? 하나님이 엘리에게 말씀하신 장면이 있습니다.

삼상2;27-29절입니다.

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네 아들들을 나 보다 더 중히 여겨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네 자녀들을 살지게 했다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못 듣는 것은 자식이 더 귀해서,

다른 말이 더 크게 들려서 못들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내 말을 듣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듣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엘리가 듣지 못하는 것은 말씀하지 않아서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자녀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다른게 더 중요해서 못 듣는것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 볼 수 없을 만큼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세우고 싶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에게도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선지자에게 망한다. 살지못할 것이라 하신게

진짜 멸망하고 망하라 하신 말씀일까요?

엘리와 아들들은 듣고도 반응을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이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빚으시고 세우시기 원하시기에 부르십니다.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매일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말씀을 읽을 때 주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그때 내게 살아 있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신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읽은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후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축복 말씀만이 아니라 어려운 이야기를 어린 소년에게 하셨습니다.

12~14, ‘엘리 제사장 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 죄 때문에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받을 짓을 했음에도 금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엘리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한번은 선지자를 통해서, 두 번째는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엘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망할걸까요?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신 것일까요?

누구든지 구원받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엘리와 아들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들들은 전쟁에 죽고 자신은 의자에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며느리는 자식을 낳았는데 이가봇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때가 있습니다.

죄 지을 때 영광이 떠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만이 아니라 엘리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가 있을 때 놓치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도 말씀하시고 엘리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 축복, 평안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일상의 삶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것 깨달을때가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회개의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8: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빌리 그레함의 외손자가 청년때에 방황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바르게 교훈해도 방항하고 16세에 집을 나갔습니다.

20대에 방황, 쾌락을 향해 달려갈수록 갈망이 더 심했습니다.

죄 속에서 인생 무너짐을 알고도 못빠져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알지 못했던 한 단어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이렇게 잘못 사는데 하나님 은혜를 과소평가하며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죄를 지을수록 부지런히 쫓아오시는 은혜를 벗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랐다고, 엎드렸습니다.

그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신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사람은 행복과 쾌락을 구하나 그 끝에서 늘 목마름을 느낍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예수 밖에 없습니다.

회개할 것 생각날 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3.

사무엘이 어떤 사람이 됩니까?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게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하나님이 세우시니 말에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 세상 살아가는 주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직장의 선지자, 가정의 선지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삼상4;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 말씀이 가능한 이유는 3;21절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하나님 주신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이 시대에 선지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 여호수아 헤셀이 이런말을 했습니다.

선지자의 사역이 놀아운 것은 이것입니다. 그가 전하는 말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지 않아 못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가진자 되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듯한 삶, 삶이 본이되는 선지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진 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삼상3;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말씀을 가진자가 말하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세우시니, 사무엘이 다른 사람을 세우더라.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세우시려 합니까?

쓰러진 사람을 세우려 함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은 남을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세우시니 사무엘이 다른 사람을 세웁니다.

왜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합니까? 나를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세워지면 다른 사람을 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세워 다른 사람을 세우는 역사가 여러분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빌리 그레이험 외손자가 플로리다에서 대형교회의 목사로 사역했습니다.

그가 은혜받고 책(Jesus All)에서 이런 도표를 만들었습니다.

Jesus Nothing  = Everything

20대까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내게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것 되게 하셨다.

아무것도 아닌 내게 예수님 오시자 하나님을 위한 모든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 분이 가정문제로 성적 외도를 했습니다.

2015년에 교회를 사임하고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또 다른 성적 비행이 드러나 쫓겨났습니다.'(네이버 검색 참고)

 

책이, 명예, 직책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살아있어야 하는데 실패하면 누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날마다 깨어, 주님께 붙들이는 사람만이 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지는 이 시대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맡은 자로 살아가십시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세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