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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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1-7 에베소교회; 생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라

  • 느헤미야강
  • 20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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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9() 새벽기도회

 

에베소 교회; 생각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라(2;1-7)

 

소아시아 7교회는 당시 대표적인 교회들입니다. 이것은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것이고 앞으로 오고 오는 시대의 모든 교회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밧모섭에서 보았던 교회를 향한 말씀은

곧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일곱 교회를 향한 예수님 말씀의 특징은

칭찬, 책망, 경고, 권면,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책망과 경고로 이어지는 말씀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회복하기 원하시는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보면서 우리 자신과 교회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일곱 편지 중 첫 번째 수신자는 에베소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전도 여행때 잠시 들렀고,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 가서 2년 반 정도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세운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 21절에서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분"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은 세상 모든 교회의 주권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설명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지상에 세워진 모든 교회를

돌보시고 찾아오시며 지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 칭찬

에베소 교회는 칭찬 받을 만한 교회였습니다.

2,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말씀을 보건대, 에베소 교회에는 많은 활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고라는 말 속에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많이 봉사했을 것 같습니다.

인내는 그들이 많은 박해를 받았으리라는 것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곳이 이교의 중심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과 디모데를 통해 잘 훈련받은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쉽게 농락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거짓을 드러낼 정도로 말씀 훈련도 잘되었고,

분별의 은사도 있어서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거짓 된 것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2. 책망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찾으라면 '그러나'입니다.

칭찬하시고 나서 바로 책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

신앙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가장 존중받는 교회가 어디일까요?

예수님과의 첫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는 사람과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타성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 칭찬하셨습니다.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당연한 행위일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의 모습을 보니 타성에 젖어 있고 습관이 되어 버립니다

모양은 있는데 내용이 없는 위선적인 모습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계속해서 새로운 사랑의 관계 속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는 관계와 사랑 없는 수고는 고역입니다.

그래서 칭찬도 하나, 책망과 경고도 하십니다.

교회는 바로 그 사랑의 관계와 사랑에 겨워 나오는 일들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을 상실하는 교회는

가만히 그 중심 깊은 곳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을 잃었다!”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사랑'은 어느 날 감정을 타고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사랑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우리와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지속되기 원하십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는

다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그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성경은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5)

생각하라. 회개하라. 처음 행위를 가지라 즉 회복하라입니다.

 

첫째, 생각하라.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입니까?

? 어디서? 언제? 믿음이 바닥을 치게 되었는지,

왜 사랑이 식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두전째, ‘회개하라!’(Repent).

생각했으면 빗나간 자리에서 돌이켜 회개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처음 행위로 '회복하라!'(Restore)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로 돌아왔으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첫 사랑을 회복하려면 생각하고, 회개와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주님은 촛대를 옮겨 놓겠다고 하십니다.

 

에베소 교회가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가 감당할 사명을 다른 교회로 옮겨 놓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다른 교회로 옮겨 놓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사명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면

내게 주실 하나님의 복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 놓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한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말씀대로 무너졌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직분도, 모태 신앙도, 믿음의 가정이어도 주님에 대한 첫 사랑을 잃으면

주님께서는 촛대를 옮겨, 더 이상 그 인생, 가정을 쓰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서 회복되어야 하는 '열심'이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더욱 위대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구원을 완성하시기까지 열심히 일하십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성령으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며, 끊임없이 성도들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며,

성도들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낙심과 절망으로 주저앉아 있는

엘리야에게 위로자로 오셨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낙심하며

죽기를 원하는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주시고 쉬게 하셨습니다.

물이 없는 사막으로 쫓겨나 유리하고 방황하던 하갈과 이스마엘에게도

나타나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또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졌음에도,

아무런 티도 없도록 하나님께서 세 친구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절대 쉬지 않으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121:3-8)

성경은 하나님의 열심에 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러한 삶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열심 있는 삶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도 제자들을 선택할 때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며

열심히 사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불렀습니다.

찢어진 그물을 열심히 깁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을 불렀습니다.

 

?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때 가졌던 감격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회복은 계속 반복돼야 합니다.

생각하고, 회개하여, 회복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하셨습니다.

개인, 가정, 교회에서 빛이 사라지면 사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존재 이유가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재가 없어진 인생, 가정, 교회에서 사명의 물꼬를 틀어버리십니다.

불림을 받았지만,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를 주님이 쓰시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얻음으로 우리의 존재 이유를 끝내지 않고

쓰임받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