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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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4장 - 요나단 신드롬

  • 느헤미야강
  • 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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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9(화) 새벽기도회
 
삼상14장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힘이란 것은 숫자의 크고 작음에 있습니다. 서열, 연봉, 따르는 사람들이 몇 사람이냐?
GNP, GDP 등등 숫자로 힘을 매깁니다.
문제는 이런 숫자개념이 믿는 사람들에게가지 들어와 숫자에 매여 있는것을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숫자가 힘이 되고, 그 수가 대세를 판가름할 만한 근거가 된다는 말씀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의 많음 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적은 제법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은 구원이나 능력은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겁니다.
가장 좋은 것은 많은 수가 질적으로도 똑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나단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전쟁에서 수가 승부를 가리는것이 일반인데 정반대의 일들이 일어납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스라엘 군사중에 무기를 가진 사람이 사울과 요나단밖에 없는데 그들이 움직임이 없습니다.
탈영병도 많으니 가만 놔 둬도 스스로 무너질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선 사람이 요나단이었습니다.
오직 자기 종 하나를 데리고 블레셋의 적진으로 쳐들어 간 겁니다.
그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능력은 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안 용사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는데 6절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요나단이 믿은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람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무모하게 쳐들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응답을 확인하면서 나아갔습니다.
9,10절이 그 내용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중간에라도 포기했을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서 적진의 한 가운데 들어간 요나단이 지나가기만 하면 블레셋 군사들이 다 넘어가는 겁니다.
순식간에 블레셋 군사 20명 가량을 죽입니다.
그 요다단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블레셋 진영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는데
급기야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소동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스라엘 진영에서도 그 상황을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요나단의 그 활약에 힘입어서 전쟁은 급물살을 탑니다.
이스라엘이 승기를 잡은 것이지요.
 
[ 전, 믿음의 사람들가운데 이런 요나단과 같은 배짱과 하나니을 향한 열심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안에서 요나단 신드롬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 우리는 졌다. 그만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때
홀연히 들고 일어나 하나님 부끄럽지 않게,
하나님이 보시고도 신명나도록
하나님이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라고 선언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요나단을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요나단 신드롬!
하나님과 함께라면 숫자는 말 그대로 허수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함께! ]
 
어느 가정이나 교회나 공동체나 똑같이, 위기를 벗어나고 구원을 얻는 것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임마누엘과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믿는 소수에 의해서 그 공동체의 역사는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용기있게 싸우는 몇 사람에 의해서 전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쟌 다르크가 그랬고, 마르틴 루터 킹이 그랬고, 죤 웨슬리나 죠나단 에드워드가 그랬습니다.
 
후반부는 사울의 실수와 패착이 드러납니다.
 
본문에서 요나단과 사울을 봅니다.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대적할자 없다고 온 몸으로 보여주는 아들앞에서
사울은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블레셋과 같은 인생의 문제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사울이 아니라 요나단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블레셋은 요나단앞에 죽어져 갔던것처럼 우리역시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   ] 위의 내용은 새벽에는 나누지 못했지만
정말 나누고 싶었던 내용이라 첨삭했습니다.
 
여러분도 바로 그런,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전지전능하심에 사로잡혀 한 시대의
새 장을 여는 한 사람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