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삼상 16장 - 중심이 깨끗한 자

  • 임재훈목사
  • 2015-10-01
  • 1,032 회
  • 1 건

2015.10.01(목) 새벽기도회

 

오늘 사무엘상 16장의 말씀은,

사울이 하나님께서 그의 왕권을 버리시게 되면서 이새의 집에 아들들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기름 붓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새 왕을 뽑아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무엘이 그 명령에 순종해서 이새의 집에 방문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새의 아들들을 한 명씩 만나서 기름부으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사무엘의 눈에 왕으로 합당해 보이는 자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자의 차이가 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과 하나님과의 사람을 보는 기준의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6-7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이 사람을 보는 기준은, 외모였습니다. 이새의 큰 아들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섰는데, 그의 외모를 보니까 감히 왕으로 세움받기에 합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은 사울이 세워질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의 키가 다른 사람의 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컸다고 했습니다. 그런 기준은 모두 외모를 보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용모와 키로는 합당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마음 중심을 보시는데, 엘리압은 그 기준에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일곱명의 아들들이 사무엘 앞에 섰지만, 하나님은 그 때마다 합당하지 않다고 모두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까지 다 본줄 알았을 때, 이새에게서 아들 하나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왜? 이새는 다윗을 사무엘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11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그 이유는, 다윗은 막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막내라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볼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 덜 자랐는데 왕은 무슨 왕이냐, 더군다나 외모와 키를 보거나 인생의 경험이나 성숙함을 보아도 그 위로 일곱명의 형들이 있는데, 인간적인 기준으로는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새는 막내아들 다윗을 처음부터 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무엘 선지자가 강력하게 요구를 하게 되니까, 어쩔수 없이 막내 다윗도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윗의 외모가 어떻다고 했습니까?

12-13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람은, 외모로 판단할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것이 내 자식에게도 그럴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새를 보십시오, 장남 엘리압이나, 막내 다윗이나 똑같은 아들이지 않겠습니까,

다섯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자식이면 다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부모라면, 모든 아들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고, 똑같은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왜 막내 다윗은 보여줄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쫌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외적인 조건때문이었습니다.

엘리압과 다윗과의 나이차이를 생각하더라도 중간에 여섯명의 형제가 더 있었으니, 장남과 막내의 나이 차이를 보더라도 적어도 10살 차이는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압은 어른같고, 다윗은 어린아이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 다윗을 왕 후보에 제외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 일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습니까?

우리 자신들은 사람을 보는 눈이 어떠한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외모와 조건으로 사람을 먼저 보는, 그렇게 사람을 대하지는 않으십니까?

우리가 얼마나 간사한지 아십니까?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명품옷을 입고, 좋은차를 타고 다니면 대단한 사람인줄 알고 관심을 가집니다. 그런데 옷도 허름하게 입고 그러면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이게 우리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는 외모가 아니라, 마음가짐 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그런 마음이 지금 당장은 고치기 힘들지만, 나부터라도 외모를 보려던 시각이, 그 중심을, 마음을 보려는 시각으로 바뀌어질 때, 이 세상이 소망이 있게 될 줄 믿습니다.

또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교회안에도 모두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누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신천하면 됩니다.

 

그러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나를 바라볼 때,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그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볼 때,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보시질 않겠습니까, 내가 어떤 마음자세를 갖고 있는가, 내 마음의 중심이 어떠한가를, 하나님이 보신다고 할 때,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이 중요한 줄 믿습니다.

중심이 깨끗한자, 중심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 하나님이 보시기에 소중한사람, 이런 것이 진정한 가치인 줄 믿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중심이 깨끗한 자를 찾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도 이 진정한 가치를 붙들며,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 강성욱 15-10-02
      사람의 가치는 외모가 아니라 마음 중심이라는 말씀을 귀한 새기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내게 보이는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으로 날마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면서도 살아내지 못하는 것 새벽에 다시 한 번 깨달음 주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