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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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15-22 아픔을 사명으로 받으면

  • 느헤미야강
  •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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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4(금) 새벽기도회
 
룻1;15-22
 
오르바가 떠난 다음 나오미는 룻에게 다시 한번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합니다.
희망없는 자신을 따라가봐야 며느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한 번 권유하면 양심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하다가도 재차 권유하면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룻은 양심 때문에 시어머니를 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16,17절이 룻의 고백입니다.
‘어머니께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
어머니의 하나님이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러니 더 이상 나를 권하여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 고백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룻의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었을까요?
룻의 고백, 선택의 기준은 사랑, 하나님때문이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습니다. 늙었고 가진것이 없습니다.
고향엔 땅도 없습니다. 멸시당하고 따돌림 받을게 분명했습니다.
룻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룻은 베들레헴행을 결심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고향에서 혼자살것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온갖 자존심 상하는 것, 현실적으로 나오미 혼자 살기에는 너무 늙었으며,
무엇보다 혼자사는 것 때문에 날마다 외롭고 고독하게 사실것도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남편잃고 살아봤으니 그 아픔 또한 어떤지 알았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것은 그냥 아픔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주신 그 아픔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료하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남이 가지지 않은 아픔, 고통이 많다는 것은
그 경험으로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위로하라고
나에게 먼저 주신 것입니다.
룻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오르바와 룻입니다.
오르바는 그 아픔을 자신을 위해서만 선택했고,
룻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위해 선택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아픔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자격이 있기때문이 아닙니다.
 
주님이 십자가 피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평생 놓치 않고 인도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사랑받을 만해서, 자격있어서가 아닙니다.
일방적인 사랑때문입니다.
자격없는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사랑이 시어머리 나오미를 살렸습니다. 그러나 룻을 살린 것입니다.
고향에 돌아가서의 모든 비난과 조롱을 이길 힘이 된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이를 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능력이 됩니다.
 
나오미 마음이 어땠을까요?
룻의 고백을 들으면서 그 마음에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었을까?
어떻게 저런 며느리가 있을까? 어쩌면 누구보다 며느리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 기도를 하나님도 들으신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룻이 베들레헴 행을 결정하게 된 두 번째 동기는 하나님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는것처럼 산 사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는 고백은
룻이 나오미를 쫓은 명백한 이유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얼마나 하나님 이야기를 들었을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룻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가족이 모압땅에서 고난당하고, 아파할 때,
내가 떠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치신것이지...
통회도 있었을 것이고 옛적 하나님 은혜를 추억하거나 하나님을 말하는 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향땅에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었다는 소식앞에서 가슴떨리며 흥분하던 시어머니,
자신을 풍족하게도 괴롭게 하게도 하셨던 하나님 이야기앞에서 룻이 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세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지 않았을까요?
'얘야, 궁금하니?'
행간을 읽어내면 조심스러운 만큼 은혜는 커집니다.
나오미의 눈가에 과거의 하나님을 회상하며 촉촉히 젖어 있는 눈길을 생각합니다.
자신도 직접 다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야기, 어떻게 애굽에서 하나님이 조상들을 돌보시고 구원하셨는지,
애굽에서부터 홍해를 건넌이야기, 먹을것이며 입을 것을 공급하신 이야기, 그리고 수많은 전투들...
광야를 거쳐 가나안땅에 들어오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나누었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룻은 직접 하나님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귀로 들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2;9-11절 기생 라합은 여리고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소식만 듣고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홍해, 광야, 구름기둥, 불기둥 등등. 직접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도 광야에서 원망하다가 죽었는데
라합은 경험한 자 보다 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성경은 이 라합과 릇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언약이 가문이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들은것만으로 믿음의 사람이 된것입니다.
 
이 룻의 고백, 나오미가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듣고 싶으셨던것은 아닐까요?
영원히 총회에 들어올 수 없었던 이방여인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보다 더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이 여인을 주목하신것입니다.
 
복음은 들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고 역사하신다는 소식,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이야기를 듣는것만으로도 믿음을 가지게 될 룻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하고, 전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기준이 되고,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축복하시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