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룻기 4장 - 나는 아무개인가?보아스인가?

  • 느헤미야강
  • 2015-09-09
  • 2,023 회
  • 0 건
20150909(수) 새벽기도회
 
아무개 VS 보아스
룻기 4장
 
룻기 4장에서는 하나님의 기업을 무를자와 아닌자가 구별됩니다.
보아스는 자신이 기업 무를 자이기는 하지만 더 가까운 사람이 있었기에 그가 책임을 감당하도록 요청하고 아니면 자신이 책임을 이행하리라 하고 당시 재판과 회의를 진행하는 성문으로 갑니다.
그리고 일차로 기업무를 자에게 정식으로 책임을 다하라고 요청합니다.
4절을 보면 제일 처음으로 기업 무를자는 ‘내가 무르리라’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기업을 무르지 않겠다 하며 보아스에게 감당하라고 합니다. 갑자기 못하겠다고 하는 이유가 5절때문입니다.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처음에는 나오미에게서 엘리멜렉의 밭은 사서 기업을 물려 주려 하였는데 룻까지 딸려 있다고 하니까 거부했습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6절,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부유했고, 돈에 삶의 목적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나이가 많으니 그와 결혼한다해도 자식을 낳지 못할테니 죽으면 그 재산이 그의 것이 됩니다.
그런데 룻은 젊습니다.
룻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에게 기업이 돌아가니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을 줄 알았던것입니다.
그 사람은 기업무를 수 있을만큰 충분히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물질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는 하나님도 결코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보아스가 귀한 것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진 사람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자기가 하겠다던 일을 실제로 행하느냐,
아니면 말로 끝내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사실, 본인이 한다고 말해 놓고도 돌아서면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그것도 자기 재산의 이익과 손해가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말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는 게 인간입니다.
보아스가 복받을 만한 인생이라는 것은 약속한 일에 대해서 마음을 바꿔먹지 않고
즉시 이행하기 위해 곧 바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내가 혼자 노력하고 애써서 주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과 약속한 일에 충성함으로 부어주시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룻이 모압에서 결혼하자 자식없이 남편이 죽었는데 보아스와 결혼하자마다 임신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주셨다는 것이고 18절 이하 다윗의 할아버지를 낳았다는 축복으로 마무리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다윗의 이야기로 펼쳐집니다.
 
제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목하게 된 것은 1절 첫 번째로 기업무를 자를 소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아무개여’ 라고 소개합니다. 이름이 아니라 친구여 그런 뜻입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보아스가 자기보다 먼저 기업무를자의 이름을 몰랐을리 없습니다.
그는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의도적으로 이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업 무르기를 거절한 사람은 그 이름도 성경에 남기지 않아
사람들이 아예 기억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은 아랑곳 없이 이 땅에서 배부르게 잘 살면 그만인가?
경제적인 이득을 따지는 안목이 아무리 탁월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업과 상관없는 그를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하나님이 기억하기 싫은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게 합니다.
 
첫 번째 기업 무를자가 계대결혼의 의무를 거절할 때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그 의무를 넘긴다는 증표로 신을 벗습니다. 그럴때 사람들은 그 사람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형제의 기업을 끊는다는 것은 이런 모독을 당하고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는 오명을 입을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물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복이 있습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에 대해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1절,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에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절,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 원한다
 
라헬과 레아에 속한 12명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게 한 어머니들입니다.
이스라엘을 세운 두 사람처럼 놀라운 조상의 어머니가 되는 축복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새, 다윗,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나라의 위대한 가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에브랏은 베들레헴의 옛 이름입니다.
이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동방박사가 찾아와 경배하듯 유명해 지고
온 열방에 생명의 떡처럼 흘러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베레스를 통해 그리스도에게로 흘러가는 족보가 이어집니다.
어디 백성들과 장로들의 축복이 알고 한 것이었을까요?
기업무를자를 향한 사람들의 축복을 하나님도 감동하셨고
그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제 마음속 가장 큰 도전은, 그 사실을 룻이 알았을까?
룻이 나오미를 따라가서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나오미가 하라는 대로 대를 잇는 결혼을 해서 아이 하나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고 살다 죽은것이 룻이 한 일의 전부입니다. 이 정도는 우리도 해 볼만한 것 아닐까요?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며, 어렵고 힘들어도 예배드리면서
가정을 꾸려 아이 하나 잘 키우는 일이라면 우리도 해 볼만 한 일 아닙니까?
룻은 자신이 다윗의 조상이 될지, 예수님의 조상이 될지 알지 못한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성실했습니다.
하찮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앞에 예배드리는 일, 기도하는 일, 봉사하는 일이 작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것이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축복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