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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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12장 - '쉽볼렛' 하라니 '십볼렛' 하다가

  • 느헤미야강
  • 201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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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0(화) 새벽기도회/ 425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쉽볼렛' 하라니 '십볼렛' 하다가
사사기 12장
 
 
1. 쉽볼렛, 십볼렛(1~6절)
입다가 암몬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찾아와 자신들을 전쟁터에 부르지 않았다고 시비를 겁니다(1절). 그러자 입다는 불렀지만 당신들이 거절했다고 분명한 사실설명을 합니다. 이어 그가 속한 길르앗지파와 에브라림지파와의 싸움을 선언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삿8장에서 기드온에게도 동일하게 시비를 걸었으나 기드온은 싸움의 대상이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음을 알고 유순한 말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이번에는 말로 넘길 문제가 아님을 알고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그 결과 에브라임 사람이 싸움에서 지고 4만2천명이 죽게 됩니다.
 
에브라임지파는 요셉의 둘째 아들이나 야곱에게 장자의 복을 받습니다. 가나안정복전쟁의 영웅 여호수아가 에브라임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전쟁때마다 용맹하여 가축도 전리품으로 많이 받았고 요단동편에 이미 땅도 차지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늘 교만했고 자신들보다 잘난 지파나 사람을 두고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들이 주관하고 자기들의 허락 하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전리품을 챙길 요량으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믿음의 길에도 이런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일에는 앞장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옳고 그름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헌신하다보면 실수하고 속상한 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반면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수할 일도 속상할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실수나 속상하게 하지 않았다고 더 잘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에브라임은 길르앗과의 싸움에서 진 후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만 동편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안 길르앗 사람들이 요단강을 먼저 점령하고 그들이 쉽볼렛을 발음하지 못하고 십볼렛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
그 발음을 못하면 죽이는 식으로 하여 4만2천명이 죽게 됩니다.
요단동편에 오랬동안 살았고, 어느새 방언에 익숙하다보니 발음이 분명하지 못한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했으나 요단강만 건너면 목숨은 건질 수 있었으나 분명해야 할 쉽볼렛을 십볼렛이라 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결말입니다. 어디 쉽볼렛을 십볼렛으로 발음한게 문제였을까요?
그 상황까지 선용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섭리가 놀라울 뿐입니다.
 
공동체의 위기앞에서, 헌신하고 충성해야할 자리에서 자신들만 생각하기 좋아하는 이들. 
시기, 질투, 자기중심, 교만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야곱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므낫세보다 축복을 덜 받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신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요단강이 있습니다.
영적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인 종말이나 우주적 종말앞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예수 그 이름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없었다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밖으로! 밖에서(7~15절)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처럼 가치있는 삶은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쓰임받은 이후의 삶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입니다.
12:8절 이하에는 입산과 엘론, 압돈이 사사로 쓰임받았습니다. 문제는 쓰임받는 삶의 내용이 없습니다.
일생을 정리한 말씀이 아들30명과 딸 30명을 두었고 그들을 장가, 시집보내는데 온 삶을 바쳤고 그리고 죽었다는 말입니다. 11절의 엘론은 10년동안 사사로 일한 기록만 있습니다. 13절에서 15절의 압돈은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을 두었고 나귀 칠십마리를 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위가 높았고, 출세시킨것 같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입산은 아들 30명, 딸 30명을 두었는데 하나같이 딸들은 밖으로 시집보냈고, 아들은 밖에서 여자를 데려왔습니다. 하나님의 평가가 자식 시집, 장가보내는 것에 일생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믿지 않는 자들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했는지 몰라도 직분이나 지위를 자식을 책임지는 것에만 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의 남편, 아내로서 나 하나 행복하고, 가정, 자식 잘되게 했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신자의 삶일뿐입니다. 부끄러운 삶일 뿐입니다. 어떻게 살았는지는 때가되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뭔가 한 일이 있어야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 부자는 매일 자신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가족에게는 좋은 아빠였을 것입니다.
행복했다. 잘 살았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후에는 달라졌습니다. 무엇때문에요?
나사로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자에게 물질을 맡기신 사명이 있음을 몰랐기때문입니다.
사명의 참 의미를 모르면 쓰임받고도 부끄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도, 직분자, 목사로 부끄럽지 않게 맡기신 사명, 은혜를 혼자만 누리지 않고 사명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이름이 남는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잘했다 평가 받는것이 부끄럽지 않은 삶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작은자 15-08-19
      수고와 헌신의 자리에 순종으로 함께 하지 않고 영광된 것만 누리려 하는 에브라임 지파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인듯 합니다.
      찔림과 도전으로 다시금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됨을 감사합니다.
    • 주님의 은혜 15-08-21
      어느 목사님의 글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기도응답이 되지 않는것이 은혜입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대부분 기도응답이 되면 하나님과의 긴밀하고 긴급했던 교제의 관계가 쉬 끊어지기 때문이랍니다.
      응답이 안되어서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씨름하며, 교제하고, 가까이 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복이라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삶의 결과보다 중요한것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깊은 사귐의 자리 없는 열매보다,
      비록 무화과나무 열매가 없어도
      외양간의 송아지가 없어도
      여호와로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받았습니다.
      밖에서 밖으로 시집장가를 보낼 여력은 없어도
      하나님만 정말 사랑했다고 인정해주는 삶이 복되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