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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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7장 - 어처구니

  • 느헤미야강
  •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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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화) 새벽기도회
 
여호수아 17장
 
 
본문 1-13절은, 요셉의 장자 므낫세지파의 땅 분배,
14-18절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지파가
땅을 더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14절,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여호수아는 땅분배시 유다지파를 제일먼저 그리고 열한번째 아들인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를
두 번째, 세 번째 순으로 분배합니다. 그러니 어느지파보다도 특권을 부여받은 셈입니다.
한 가정에 불과했던 야곱의 아들들이 한 민족을 누리게 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런 요셉을 대신하여 아들 둘이 지파를 형성하고 복받은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몫이 부족하니 땅을 더 달라고 합니다.
아직 7지파는 땅을 분배받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이미 받은 지파가 더 달라합니다. 요즘말로 참 어이가 없습니다.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했습니다.
요셉가문의 사람입니다.
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여호수아 친인척들입니다. 형들, 할아버지입니다.
정복전쟁시 누구보다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제 몫을 누려야 할때에 가족, 일가친척들이 더 큰 몫을 달라고 합니다.
개국공신들이 한 자리 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수아의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처방이 놀랍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15절)
 
가문, 형제, 가문의 어른들에게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누구보다 지지해주고 사랑하며 격려해주었을 사람들.
그들의 요구앞에서 바른것이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
 
어떻게 이런 결정이 가능했을까요?
 
여기까지 도우신 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 백성을 이곳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를 이 자리에 서 있게 하신 분이 가족들, 친인척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르게 하신 분도 하나님,
내리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심을 알았기에
사람들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결정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그런 여호수아였기에 요셉의 두 아들 지파에게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17;1절은 ‘용사였기 때문에 길르앗과 바산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는 므낫세지파는 용사들이 많으니 갈렙처럼 지금 분배받은 땅이 조금 부족하다해도
주변족속을 정복해서 자신의 땅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받은 축복, 특권은 기억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 부족한것만을 요구했습니다.
 
요단동편에 이미 므낫세 반 지파가 땅을 차지하였고,
요단서편에도 세 번째로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먼지 분배받았다는 것은 다른 지파에 비해 좋은 땅을 분배받았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아들 중심으로 땅을 분배받았던 당시에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도
땅을 분배할 수 있는 특별법까지 세웠으니 복받은 지파입니다.
 
요셉지파의 아쉬움은 이미 하나님이 주신 복을 너무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미 받은 축복과 특권을 과소평가했습니다.
아버지의 삶으로 주어진 특권을 잘 못 이해했습니다.
받아야 할 몫, 누려야 할 가치로만 특권을 이해했습니다.
 
갈렙은 누구보다도 누릴 특권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는 가장 좋은 땅을 요구하고 편안하게 차지할 수 있었으나
헤브론 산지를 요구하고
거주하는 아낙자손을 쫓아내 약속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요청하고
점령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마침내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은 달랐습니다.
 
누구보다도 특권을 가장 아름다운 모델로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
창조주가 인간이 되셨습니다.
특권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시고 죄인된 인간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40일 금식하신후 세 번에 걸친 사단의 유혹앞에
특권과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전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역시
특권을 유지하게 해 달라함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위해 자기의 특권을 내려 놓았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오라
그리하면 믿겠노라 조롱할때에도
나의 구원을 위해 특권을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특권을 오로지
온 인류를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므낫세는 이미 가장 탁월한 축복 특권을 받았지만
잘 못 오해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는 이 정도는 누려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누릴 것만을 계산했습니다.
참, '어처구니' 없습니다.
 
어처구니!
맷돌의 손잡이입니다.
맷돌을 돌리는데 손잡이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처구니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버렸을때 하는 말입니다.
 
특권은 있는데
어떻게 사용할지를 모른다면
어처구니 없는 것 아닐까요?
 
남보다 더 많은 지위나 권력, 명예, 소유를 주신 것은
사명때문입니다.
영혼을 위해, 한 시대를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도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입니다.
 
참된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실 때 그냥 보내시지 않으시고
사명 감당하라고 보내신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여호수아!
멋진 여호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