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계 14장_하늘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 느헤미야강
  • 2019-09-14
  • 382 회
  • 0 건

20190914() 새벽기도회

 

하늘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144,000명 <14:1-20>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중 하나는

힘들다’ ‘죽겠다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13장에서는 땅에서 일어나는 박해를 666표와 연결하여 다루고 있는데,

666은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성도를 박해한 사탄의 표를 받거나.

6이 완전수 71이 모자라는데 666은 영원한 실패, 좌절, 불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의 수이다. 결국 이 권세는 실패함을 보여줍니다.

14장에서는 이마에 하나님과 어린 양의 이름이 쓰인 하늘에 있는

144천명의 성도가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과 하늘의 광경을 교차하여 보여줍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가 이 땅에서 사탄의 공격을 받아 환란을 당하겠지만

결코 땅에서 일어나는 일만 보지 말라, 하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하늘을 보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십사만 사천 명이 부르는 새 노래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큰 물소리 같고 뇌성처럼 강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십사만 사천 명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십사만 사천의 수는 하나님의 자녀인 구원받은 모든 성도를 말하는 상징의 수로 

셀 수 없이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만 다니면 누구나 십사만 사천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정절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드리는 첫 열매로서 구원을 받았습니다.(4, 새번역)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결코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닙니다. 삶이 구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에 천사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첫 번째 천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천사는 자기 음행으로 빚은 진노의 포도주를 모든 민족에게 마시게 한 

큰 도시 바빌론이 무너졌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에게 절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고 경고하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추수 심판의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날선 낫을 들고 추수하는 자가 둘이 등장합니다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날이 선 낫을 들고 앉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또 하나는 역시 날이 선 낫을 든 천사입니다. 천사가 주님께 외칩니다

15, ”낫을 대어 거두어들이십시오. 땅에 있는 곡식이 무르익어서, 거두어들일 때가 되었습니다." (새번역)

그러자 구름 위에 앉은 분이 낫을 땅에 휘둘러서, 땅에 있는 곡식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이어 날이 선 낫을 가진 천사도 낫을 휘두르는데

익은 포도를 추수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를 만드는 술틀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자 그 틀이 밟히면서 엄청난 피가 흘러 나와 온 땅에 퍼져 나갔습니다

피가 퍼져나간 넓이가 1,600 스타디온이라고 하였는데

이 길이는 이스라엘 남쪽에서부터 북쪽까지의 거리입니다

한마디로 그 혹독한 심판이 온 세상에 임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드신 낫에 의하여 거두어진 알곡 같은 사람이 있고 

천사가 휘두른 낫에 의하여 거두어져 포도주 틀에서 버려지고 밟히는 사람입니다

알곡 신자는 고난을 당할지라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은 성도입니다

포도즙 틀에 던져져 짓밟혀 으깨어진 사람은 짐승을 따르고 666표를 받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알곡과 진노의 포도주 사이에 중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계 14장에서 주시는 메시지는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보다 비교할 수 없이 무서운 것이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죄짓고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겪을 심판은 너무나 두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11절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불과 유황의 연기가 그 구덩이에서 영원히 올라올 것이며

그 짐승과 짐승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과, 또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에도 낮에도 휴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고난을 당하다가 순교한 자들이 복됨을 선포하십니다.

13,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일이 그들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죽은 자가 복되다 하십니다

주 안에서 죽는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분명히 고백하였기에 죽임을 당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죽음으로 더 이상 고난을 당하지 않게 되었고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들이 당한 고난으로 인한 상이 뒤따르니 복 있는 것입니다

8;18절 말씀대로 그 영광은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순교할 복을 받지는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순교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도 주 안에서 죽는 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주 안에서 죽을 수 없습니다

고난이 올 때 도망가거나 움츠러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는 악한 사람이 큰 소리로 하나님을 대적할 때

무서워 말도 못하는 심약한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면서도 싫은 소리 듣고 해코지함을 당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그런 자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보낸 12 정탐꾼들이 돌아와 10 사람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단 두 사람뿐이었지만 담대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보고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입니다

.

우리는 또한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만 부를 수 있는 노래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내가 십사만 사천에 포함될지 아닌지는 그 찬양으로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내게 십사만 사천의 성도가 부르는 그 노래가 있는가?” 확인해야 합니다

성도에겐 반드시 하늘의 노래, 찬양이 있습니다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찬양은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자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계시록 14:1절에 보면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이 시온 산에 서 계신 어린 양과 함께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천상의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은 어린 양 예수를 바라보며 찬양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불러진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

한 밤중에 노래하였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노래는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의 찬송’, ‘고난 중의 찬송그것은 오직 구원받은 성도만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지옥의 권세를 뒤흔들고 천군천사들을 심히 부럽게 하며 

하나님을 황홀하게 하는 최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짧게 한번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잠깐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 때,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 중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너무나 귀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 한 밤중에 노래하였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 맞을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두 사람만 있어도 영적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이제 고난을 당한다고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는 말을 중단해야 합니다

오히려 십사만 사천의 무리들만 부를 수 있는 고난 중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주님 신앙의 길이 왜 이렇게 힘듭니까?

그러자 성령님께서 신앙의 길은 쉬운 것이라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 그 말씀에 아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잠잠히 생각해 보니,

주님의 말씀이 옳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을 묘사하기를 어린 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종 된 자는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쉬운 일입니다물론 신뢰하는 자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고난 중에도 노래하게 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찬양을 부르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