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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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5장_하나님의 심판을 노래할 자

  • 느헤미야강
  •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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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7() 새벽기도회

 

하나님의 심판을 노래할 자 (15:1-8)

 

계시록은 1-3장까지 첫 번째 환상으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말씀을 주십니다.

이어 4장부터 16장까지는 세가지 연속되는 심판이 시리즈로 진행됩니다.

일곱 인의 심판, 일곱 나팔 심판, 그리고 일곱 대접 심판입니다.

그중에 15장과 16장은 마지막 일곱 대접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곱 대접 심판의 마지막 일곱번째 심판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16:17~21)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이는 17~18장에서 상세히 묘사됩니다.

여섯번째 대접 심판은 아마겟돈 전쟁(16:12~16)을 다루는데

이 주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적그리스도의 멸망과

사단의 멸망을 다루는데 19:11~20:10절에서 확대하여 설명합니다.

 

11장에서 요한에게 일곱째 천사의 나팔과 함께 마지막 재앙이

선포되는 환상을 보여주셨지만 실제로 마지막 재앙은 15장에 와서 임합니다.

그 사이에 계12,13장에서는 교회를 공격하는 자가 사탄임을 알게 하시고,

14장에서 하늘 성전에 있는 십사만 사천의 무리들의 찬양을

들려주심으로 위로와 힘을 주셨습니다.

15;1절에서 요한은 하늘에서 크고도 놀라운 또 다른 표징을 보았는데,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인

일곱 재앙입니다. 그 순간 요한은 어떤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 위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들고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 두려운 순간에 노래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2짐승과 그 짐승 우상과 그 이름을 상징하는 숫자를 이긴 사람입니다.

즉 마귀와 싸우고 이긴 사람들입니다.

짐승의 표를 끝까지 거부하고 짐승에게 머리 숙이지 않고

죽임을 당할지라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때, 노래하는 자가 됩니다.

그 노래를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고 했는데,

곧 구원의 노래, 사단과 싸워 이긴 승리의 노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믿는 자가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깨닫습니다.

마귀와 싸우는 자입니다.

 

이어 그들이 찬양하는 내용이 3-4절인데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심판의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의롭고 참되심과 홀로 거룩하심과 정의로운 행위

밝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만민의 왕이신 주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도 참되십니다.

4절 주님,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 앞으로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정의로운 행동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새번역)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찬양받으실 일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이렇게 불의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억울한 사람이 많고 악한 자, 가진 자들만 배부른 세상인데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이 세상에는 억울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연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권력과 돈, 사회적인 지위 등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죽거나 병든 사람,

재산을 잃어버리고 명예가 심각하게 더럽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우리시대는 정의, 공평, 정직을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악과 불의, 탐욕과 은밀한 죄가 심판받을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 날은 마귀와 싸우느라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였던 사람들,

억울한 자, 상처받은 자, 빼앗긴 자들에게 참으로

기쁜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노래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5-8절을 보면 하늘에 있는 장막 성전이 나타납니다.

이 장막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성막 원형입니다.

죄를 지은 자는 제물을 가지고 성막에 와서 속죄 제사를 드려

죄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성막의 원형인 하늘에 있는 장막 성전을 요한이 본 것입니다.

그 성전으로부터 깨끗하고 빛나는 모시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띤 일곱 천사가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던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채운 금 대접 일곱 개를 그 일곱 천사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 일곱 대접의 재앙이 시작되는데, 그 순간 장막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에서 나오는 거룩한 연기로 가득 찹니다.

이어 일곱 재난이 끝나기까지 아무도 그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너무나 두려운 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속죄의 제사도, 제사장의 기도도,

회개나 씻음이나 정결의 기회도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지금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은혜의 때를 살고 있는지 깨닫습니다.

세상이 악하다 악하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은혜의 때입니다.

회심이 일어나고 지옥에서 영생으로 심판에서 생명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생기고 부흥도 일어나는 때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장막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이 은혜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회개도 구원도 없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정말 마지막 때입니다. 이때가 임하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만 알고 마귀를 두려워하며 은근슬쩍

마귀와 타협하며 산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 노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교인들 중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때,

노래할 자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설교가 너무나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설교가 귀함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삶을 살게 하는 마귀와 싸우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어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강조하지 않는 구절인데 창18;19절에는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삶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드리지 못하면

예수 잘 믿는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산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 하나님의 자녀는 두 가지 열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의를 행하는 것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일 3: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의를 행하는 것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다 잘 지키는 것이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려다보면 정의로움을 포기해야 할 때가 생깁니다.

의를 행하려다보면 정의의 명분으로 잔인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도저히 100% 사랑하며 또 100% 정의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오직 한 길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임재와 동행하는 삶을 사모하며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마귀와 싸우는 자여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가 아니고서 누가 마귀와 싸울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산다고 하면서 마귀와 싸우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도 부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거룩하며 마귀와 싸우는 자로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찬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