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자토새; 단3;1-7 내게 있는 느브갓네살왕의 금신상

  • 느헤미야강
  • 201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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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자녀위한 새벽기도회

 

내게 있는 느브갓네살 왕의 금신상 <다니엘 3;1-7>

 

느브갓네살 왕이 자기를 높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신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경배하게 합니다.


3;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이 행동이 이해 안됩니다.

2장에서 다니엘이 꿈을 해석하여 지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꿈을 풀이했습니다. 느브갓네살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행복축제에 새가족을 초청했습니다. 예배중에 눈물흘리며 은혜받았습니다.

찬양 들으며 눈물 쏟는 경험이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결단하기도 합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로다’.

자신이 꾼 꿈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도 꿈을 이야기하고 해석까지하니 놀라우신 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전혀 다른 모습 보이는지를 발견합니다.

느브갓네살 왕의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2장 끝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영광돌리던 그가 어떻게 돌변했습니까?

느브갓네살 왕의 모습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느브갓네살왕이 금신상을 만들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은혜 감격하고도 변하지 않는 것은 2가지 성품 때문입니다.

 

첫째, 교만과 자기과시입니다.

3;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대략 높이 30미터, 너비 3미터의 신상이자 대형 건물입니다.


3;2 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느브갓네살 왕이 금신상 낙성식에 참여할 사람의 직분을 다 열거했습니다.


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자세히 보면 금신상의 규모, 초청한 사람, 악기 열거, 다 규모를 강조합니다.

규모를 강조함으로서 느브갓세살 왕은 자기과시를 강조합니다.

 

이런 모습 보며, 목회현장, 목사도 성도도 저를 위시해서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자기과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아도 잘 없어지지 않는 것이 교만과 자기과시입니다.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자기과시를 포함한

교만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인간 내면에 도사린 교만이 있고 그 속에는 자기과시가 있습니다.


가끔씩 주변에서 저를 보고 처음 보았을때처럼 거만하지 않고

목이 꽂꽂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 말 들으면 안도감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11계명을 잘 지켰구나 싶습니다.

너는 너의 부족함과 실수를 결코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라.’

애쓰고 노력해서 남들은 눈치채지 못했기에 모르는지 모르나

제 내면에 꿈틀대는 자기과시를 역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것 자유하다면 중병에 든 것이거나 자기만 못 느낄 뿐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규모를 열거하는 것을 보고 자기과시하는 모습을 보며,

놓치지 말아야 겠다 다짐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 잠자기 전 마다 우리교회가 세계적인 교회,

이곳 토론토 혹은 리치몬드 힐 주변에서 탁월한 교회 성장하는

대표적인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틈만나면 자기과시, 말 실수, 다 교만해서 나오는 것이니 실수하지않게

해 달라고 그 기도를 먼저 하게 됩니다. 제가 저를 잘 아니까요.

 

사울왕을 출발이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상9;21을 보면 가장 작은 지파’, ‘가장 약하지 아니하니이까’.

출발이 겸손으로 시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결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삼상15장에 아막렉과 전투에서 승리후에 세운 것이 무엇입니까?

삼상15;12절을 보면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웁니다.

이 전쟁 하나님이 명하고 하나님이 주관하신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 승리했으면 하나님을 위한 기념비를 세웠어야 합니다.

겸손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지나니 교만했습니다.

느브갓네살왕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번 동부지방 부흥성회를 주관하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집회를 감당하는 일이나 자리를 채우는 일이 쉽지 않겠다. 

멀리 한국에서 강사님이 오시는데...

그러면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빈자리를 채우면 되지.

은혜의 자리에 사모하는 사람들이 받을 은총 우리가 받으면 되지.

그런데 그 내면에 나를, 우리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회개했습니다.

 

내버려두면 저절로 자라는게 잡초입니다.

내버려두면 저절로 자라는게 교만입니다.

내버려두면 저절로 자라는게 교만이고, 교만이 만든 열매가 자기과시입니다.


자기과시 하는 모습 보면 안쓰럽습니다. 얼마나 허했으면 그럴까.

우리 어마한 희생보다 작은 성취감이 필요합니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자기과시 않고 헌신하는 작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10월 한 달동안 우리가 기도할 첫 번째 내용입니다.

- 믿음안에서 작은 성취감을 맛보게 하소서.

- 빛도 이름도 없이 자기과시 하지 않고 헌신하는 한 달되게 하소서

 

두 번째, 은혜받고도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2장후반부, 다니엘이 자기 꿈을 해몽하는 것을 보고

나라의 흥망예언이 그를 두렵게 한 것입니다. 망하게 되는 것인가?

그 두려움이 창조주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과시를 통해 금신상 만들게 됩니다.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내면에는 누구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기과시 내면에는 불쌍함이 있습니다.

 

갑질! 당하는 사람아닌 그 사람이 불쌍한거에요.

내면의 두려움, 신뢰 없으니 억압으로 나타납니다.

갑질로. 갑질에 열받지 마십시오. 긍휼이 여기고 넘어가면 됩니다.

자기 자랑이 많은 사람은 교만하다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면이 허한 사람입니다.

 

사울왕은 전쟁을 이기고 자신의 허세를 세운것입니다.

역시 두려움에서 나온것입니다. 그는 죽을때까지 다윗을 견제합니다.

비열한 짓 왜 할까요? 권력 다 가진 왕인데 내면에 두려움 때문입니다.

다윗이 물맷돌로 블레셋 군대 장수 물리치자 백성들의 반응이 대단합니다.

삼상18;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여자들은 목사님 목사님 하며 칭찬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삼상18;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 사울이 다윗을 주목합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백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왕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나를 이어 요나단이 왕이 되어야 하는데 뺏길 것 같은 두려움.

그가 더 인기 있는 사람이 될까봐입니다. 두려움 있으니 기념비를 세웁니다.

나 이런 일 했다는 거에요.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두려움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 가려지지 않으려 자기과시로 나타났습니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56;3,4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내면에 두려움의 문제가 있으면 우리는 자기과시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문제를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식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실 것입니다.

 

10월에 드릴 두 번째 기도제목은 이것입니다.

- 어떤 문제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2. 문제를 자기 힘으로 풀려는 태도입니다.

2장은 다니엘이 꿈을 해석합니다. 이방인 느브갓네살왕 심오한 하나님의 뜻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2가지는 알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강해보이는 제국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또 하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제국 하나남이 다스리고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 알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알고도 시인하고 찬양했음에도 3;1절에 금신상을 만들었을까요?

금으로 신상 만들었으니그리고 대조적인 것이 2;32절입니다.

꿈 해몽 통한 제국 모습을 보니 금으로 시작하여 진흙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것 듣고 금신상으로 도배한거에요.

점점 더 부실해지는 신상의 모습을 보며 자기가 나선것입니다.

나는 몸 전부를 금으로 치장한 신상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도 이런 일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모든 것 해결하고, 풀려고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내가 해결하고, 내가 뭔가를 드러내려는 이 속성이 우리의 금신상입니다.

 

구약에 아브라함과 롯이 있습니다.

두 목자 사이에 다툼이 있게 되자 결별하기로 합니다.

문제를 자기 힘으로 풀려는 사람이 있고, 아브라함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룻은 창13;10절에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지역을 바라본즉

그리고 즉각적으로 선택합니다. 믿음 없음을 즉각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13;14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아브람은 롯이 즉각적으로 판단한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림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 있는 곳에서... 바라보라’.

자기 힘으로 풀려던 롯, 멸망하는 소돔이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하나님 경험하고도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는 모습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대안이 있는가? 우리의 대안은 무엇일까요?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서 대안을 발견하게 됩니다.


3;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 17절만 있다면 능히 건져낼 것이라고만 고백했다면 완전한 고백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이것을 결정하는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내가 기도하면서 이미 결정했다. 건져내시는 것도,

그곳에서 죽는 것도 하나님 뜻이니 나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이런 고백입니다.

 

우리 기도에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가 빠져 있으면

사실은 하나님은 들러리 일뿐입니다.

기도하면 바꿀 수 있다가 아니라 중요한 하나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바울은 기도하면 바뀐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자기를 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생각에 자기 생각을 바꾸게 하신다는 것을 안것입니다.


고후12;8 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제가 매년 야외 예배를 드리는 날이 되면 비 안오게 해 주세요. 늘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님을 알았습니다. 오면 기도원 실내에서 하면 되는 거에요.

안 오면 감사하고, 오면 우리 계획 바꾸면 되는거에요. 

비가 안와야만 내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다고

그게 하나님 뜻 아니냐고 그게 우리의 기도방식입니다.

하나님 계획 바꾸려는 우리의 기도를 바꿔야 합니다.

 

오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0월 한 달동안 우리가 기도할 제목은 이것입니다.

첫째, 믿음안에서 작은 성취감을 맛보게 하소서.

둘째, 빛도 이름도 없이 자기과시 하지 않고 헌신하는 한 달 되게 하소서

셋째, 자기 힘으로 모든 것 해결, 풀려고 하는 악한 본능이 있습니다.

넷째, 내 뜻에 맞추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내 생각을 맞추어가는 한달 되게 하소서.

다섯째, 이것을 거스르는 것이 나의 금신상임을 알고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살게 하소서.


부모님들은 가정의 자녀들, 우리교회의 다음세대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새벽에 나온 청년, 교회학교 어린이들은 강단앞으로 나오면 축복하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