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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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1장_예수 그리스도의 종

  • 느헤미야강
  •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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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새벽기도회

 

예수 그리스도의 종 <유다서 1:1-2>

 

유다서의 기자는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야고보를 가리

킴으로 유다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다가 이 서신을 쓴 동기는 3절에 있는대로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

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라고 합니다. 당시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믿음의 도를 무너뜨리고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믿음의 도를 변호하기 위해 이 서신을 섰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마다 믿고 고백하는

예수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시는 예수님, 어떤 사람들은 부자 되게

해주시는 예수님, 어떤 사람들은 병 고쳐주시는 예수님, 어떤 사람들은 성공

하게 해주시는 예수님, 이런 식으로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입니까?

1절을 보면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유다도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유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어려서부터 자기들과 꼭

같은 형제로 알았던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자신들은 그의 종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주와 그리스도라는 말은 죽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이 한 마디의 말을

전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핍박도 받지 않을 것

인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기에 순교까지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중요한 고백이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유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같은 부모 밑에서 자기들과 같은 사람인줄

알고 살았는데 그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입니까?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된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오백여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기에

그 제자들의 무리 속에 예수님의 동생들도 함께 있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14절을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모인 무리 중에 예수님의 동생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 무리의 수가 12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자 그 제자들이 나가서 전한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2:36절을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니 그동안 자신의

육신의 형으로 알았던 예수, 심지어 미쳤다고 여기기까지 한 예수,

그래서 믿지 않았었는데 성령이 임하게 되니 자신은 갑자기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바울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9). 

그러자 이단의 괴수라고 여긴 예수가 갑자기 주와 그리스도가 되고 

자신은 그의 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왕이시고,

우리는 그의 종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내가 주인이고 예수님은 알라딘의 램프처럼 주문만 외우면 펑 나타나서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면서 나타나는 그런 거인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 거인을 불러내는 주문을 기도로 바꾸고 그 램프는

문지르는 손길을 정성으로 바꾸어 예수님도 기도와 정성으로 불러내어

자기의 욕망을 이루고 싶어 한다면

이것은 결단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합니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님의 형제라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형제는 야고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 그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호칭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호칭입니까?

마귀의 종이 아닙니다. 세상의 종이 아닙니다. 자기 영광이나 자기 자존심의

종이 된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이 얼마나 명예로운

명칭인 것입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과연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이 감사와 감격으로 다가옵니까?

만약 우리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말로만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한다고 말하면서 그 마음이 멀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가르침이란 사람이 언제나 주인공이요, 중심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세상의 모든 학문이라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결국 사람 중심입니다.

곧 사람을 위함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외치는

구호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 중심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맞습니까? 우리는 그의 종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의 주인이 내 자신이 아닙니까?

나의 만족과 나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나의 영광과 성공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유다라는 이 말한 마디 앞에서 회개할

것이 갑자기 산더미같이 밀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삶 전부가 회개거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종의 자리에 있지 않고

주인의 자리에 있는 것을 회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6:33).

이것을 알려주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내용도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어야 자신이 진정으로 종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