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계1장_주여 내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 느헤미야강
  • 2019-08-28
  • 370 회
  • 0 건

20190828() 새벽기도회

 

주여, 내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1:1-6, 17-20>

 

요한계시록은 읽기도 이해하기도 설교하기도 쉬운 책이 아닙니다.

묵시와 예언, 상징으로 가득한 책이므로 다루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읽고 묵상하며 알아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 이단으로 인한 혼란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고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3절 말씀대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지금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되 지금도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항상 함께 하시는 주 예수님을 더 분명히 바라보기 위하여 읽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1;1)

새벽에 요한계시록을 읽어가면서 이안에서 증거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고 지금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계시록이 쓰여질 당시는 주후 90년대 중반으로 로마 황제로부터 교회가 극심한 박해를

받을 때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9절에서 자신을 소개하기를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교회도 요한 자신도 핍박으로 인한 고통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는 황제 숭배라는 방법으로 거대한 영토를 통치하려고 했습니다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면 안녕과 복지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숭배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무자비한 핍박이었습니다

네로 황제 때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했고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도미티안 황제 당시에는 박해가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교회와 성도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고 

믿음에서 떠난 교회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핍박을 당하는 당시 교인들은 주님이 왜 자신들을 내버려두시고

속히 재림해 오시지 않는지 답답해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이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들과 늘 함께 하시는 것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실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1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다. 나는 한 번은 죽었으나, 보아라,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 사도를 통하여 부활의 주님을

바라본 성도는 아무리 박해가 심해도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 우상이나 황제의 신전은 규모나 위세가 엄청났습니다

그에 비하여 교회는 다 가정교회였습니다. 외형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로마 제국이 교회를 핍박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미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는 교회를 무섭게 핍박했습니다

교회의 세력이 커서도 테러집단이기 때문에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이 그들을 두렵게 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심을 믿고 죽음도 감수하고

예수님만 주라 고백하는 성도들을 본 로마 군인들이 질렸습니다.

그렇게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하심을 바라보는 교회와 성도를 무너뜨릴 힘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지냈고 가장 사랑받는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고, 쓰러져 죽은 사람처럼 꼼짝을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이전에 육신을 가지고 함께 계셨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영광의 주님이셨습니다.


13, 그 촛대 한가운데 '인자와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14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과 같이, 또 눈과 같이 희고, 눈은 불꽃과 같고,

15 발은 풀무불에 달구어 낸 놋쇠와 같고, 음성은 큰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16 또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칼이 나오고,

얼굴은 해가 강렬하게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 모든 표현은 상징인데

한마디로 주님의 모습이 말로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놀랍고 영광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죽은 사람처럼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쓰러진 요한을 일으키시고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전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자세히 읽어 보면 초점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요한계시록에는 미래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그러나 미래에 될 일에 대하여는 다 묵시로 상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말씀은 하시지만 천으로 덮어 대략의 윤곽만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미래에 될 일을 알려 주시려 하셨다면 이렇게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천으로 덮어두신 미래를 어떻게 해서든지 벗겨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오해가 많은 책이 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휴거, 666, 바코드, 베리칩, 144,000, 종말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이런 호기심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님의 재림이 언제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맞을 것인가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이단들은 마지막 심판 때 구원받을 자의 수는 정해져 있다고 하면서 구원받을 자가 차게 되면

종말이 온다고, 자기들에게 와야 구원받게 된다고 미혹합니다.

이런 식으로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다 왜곡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예언을 주신 것은 앞으로 종말에 될 일을 말씀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8절에 하나님을 소개할 때, “이제도 있고를 먼저 언급한 다음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했습니다. 현재가 강조된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가 아니라 미래를 말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1장을 묵상하면서 감격하였습니다. 요한이 노년에 밧모 섬 감옥에 갇혔을 때,

얼마나 처량하고 막막하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이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핍박이 무섭게

닥쳐오자 교회들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인들이 믿음을 잃어버려 무너지

기도 했고 어떤 교회는 핍박을 피하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기도 했고, 이단과 싸우다가 사랑을

잃어버리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요한은 한걱정이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무너지는가? 복음은 여기서 중단되는가?

그 때 주님께서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전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린 양이신 주님은

그 분의 교회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교회들 사이를 다니며

여전히 촛대를 놓지 않으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이 울지 않았을까요?

저도 이 말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금도 이 땅의 교회와 우리 교회 성도들과도 함께 하고 계심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주님은 여전히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계시며, 지금도 말씀하시는 줄 믿습니다.

 

저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이야말로 포기 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저는 이 땅의 교회가 문제가 많아도 성도들에게 부족함이 많아도 하나님께서

교회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저를 보니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문제 많은 우리나라 와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세상이 너무 커 보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는 가물가물하고 세상은 현실이고 당장 큰 문제라고

여겨집니까?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을 읽고 또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에 살지만

머릿속에는 요한계시록의 장면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더 이상 커 보이지도 두

렵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간절히 기도가

되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도 말씀하여 주옵소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 대부분이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책망도 부러웠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우리 교회에 친히 말씀하신다면 책망이라도 감격할 것입니다.

이 놈아 정신차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해.” 하실지라도 그것이 주님이 주신 말씀이 맞다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돌이키게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문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많은 교회들을 주님이 다 아실까요? 모든 교회에 일일이 말씀하실까요?’

이것이 믿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을 읽게 하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은 우리 개개인에게도 너무나 관심이 많습니다.

일일이 말씀하시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눈이 뜨여야 합니다.

 

외로운 밧모 섬 감옥 안이지만 영광의 주님을 보고 쓰러졌던 요한은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묵시를 보고 너무 행복하여 목 놓아 울었을 것입니다.

"넌 혼자가 아니란다." “내가 있잖아.”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는 그 음성에 심장이 터질 듯 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요한 계시록을 읽어가면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음성이 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있잖아!”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답이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면서 계시록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도 내가 있잖아, 넌 혼자가 아니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주님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