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계3장_살아있으나 죽은 자

  • 느헤미야강
  •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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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30() 새벽기도회

 

살아 있으나 죽은 자 <계시록 3:1-6>

 


사람이 보기에 좋다고 실상도 좋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상은 그렇지 못한데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오히려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사데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사데 교회에 편지를 보내신 주님은 너는 죽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1 ...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주님께서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데 교회가 그렇게 나쁜 교회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위로부터 칭찬받는 교회로 보입니다

님께서도 너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라고 하셨습니다.

살았다는 이름을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위로부터 사데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야라고 불리어졌다는 말인데,

좋은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죽었다고 말씀하셨으니

사데 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주님은 왜 사데 교회에 이처럼 심한 말을 하셨을까요?

1절에서 주님은 나는 네 행위를 안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 모르는 네 행위까지 나는 다 안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을 주님도 안다는 것이 아닙니다.

2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하셨습니다.

사데 교회가 사람들이 볼 때는 칭찬할만한 교회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온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온전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데 교회가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럴 수 있을까요?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문구 하나도 다 지키려고

애를 쓴 사람으로 자타가 경건한 사람이라고 인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회칠한 무덤이요, ‘독사의 자식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게 죄짓고 사는 것도 나쁘지만 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고 형식만 있고 교만이 가득한 것은 더 심각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 자신이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나 만큼만 신앙생활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새벽기도 안하는 사람이 무슨 교인이야?

봉사도 안하는 사람이 무슨 임원이야?

이런 사람들이 소위 신앙생활 잘한다고 칭찬받는 사람들입니다.

 

사데 교회의 죄는 버가모나 두아디라 교회처럼 교인들이

세상 풍조를 따라 음란하고 방탕하며 우상숭배 하였던 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좋다, 참 열심 있다. 모범적이다.” 하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교인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왜 나쁘겠습니까?

사람들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는 것이 다르니 문제입니다.

사람들로부터는 칭찬을 받으나

주님으로부터 무서운 책망만 받을 수 있음이 충격이고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평가만 의식하며 살면 안 될 일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칭찬 받는 삶을 살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읽찍 아버님이 돌아가신탓이기도 했습니다.

성실해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효도이고 바른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모범생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는지 몰랐습니다.

그것을 목사가 되어서야 깨닫고 얼마나 회개하였는지 모릅니다.

 

바깥에서는 온유한데 집에 와서는 폭군인 사람이 있습니다.

방은 어질러 놓고 지내면서 화장만 예쁘게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실상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평가가 자신의 진짜 모습인줄로

스스로 속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사람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죽은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데 교회를 향하여 너희들은 사실 죽은 교회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진노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안타까움과 눈물이 가득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데 교회는 완전히 죽어버린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죽은 교회에 편지는 왜 보내셨겠습니까?

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새번역).

막 죽어가는 자들을이라고 했습니다.

시체를 보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막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은 마음이 안타깝고 고통스럽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막 건졌는데, 숨을 쉬지 않는다면 슬퍼만 하겠습니까?

달려들어 인공호흡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사데 교회였고 이것이 주님의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데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사데 교회에 아직 죽지 않은 이들이 몇 사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사데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이 있다”.

이런 사람이 몇 사람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진실로 주님을 바라보며 신실함을 지키는 몇 사람의 성도들이 있었기에

사데 교회는 주님의 편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마저 막 죽어가는 상황이라 주님은 안타까우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 것 같습니까?

영이 완전히 죽은 사람이라면 오늘 교회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가고 있을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날 기도 중에 주님의 말씀이 들려오기를

나는 네 행위를 다 안다.” 하시면 기쁘겠습니까? 두렵겠습니까?

사람들 앞에서는 부끄러울 것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두렵다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속히 깨어나야 합니다.

 

주님은 2절에서 사데 교회를 향하여 깨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어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지금은 잠들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탄식은 귀에 들리지 않고 사람들의 칭찬에 만족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애통해 하시는데 자신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지식, 교리 지식이 있고, 교회 생활 열심히 하여 사람들이

예수 잘 믿는다.’ 하는 말을 듣는 것에 만족하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혼자 있을 때, 주님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4절에서 주님은 사데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이 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인데,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사람만 교회에 다닐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교회는 저 사람은 들어올 수 없어가 없는 곳입니다.

어떤 죄인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으로 들어왔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교묘하게 의인인척 꾸민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의인인줄 착각하고 사는 죄인이면 안 됩니다.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위가 온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행위가 온전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다면 주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필드에서만 좋아하는게 아닙니다.

하루종일 생각하고 자리에 누워서도 생각합니다.

주님을 마음에 영접한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항상 주님만 생각합니다.

이처럼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행위가 온전한 자가 됩니다.

 

사데 교회에 대하여 주님은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3절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인데,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우리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 영접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분명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면서 진정 주님을 바라보고 살지 못했다면

이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비록 죄에 넘어져도

금방 깨닫고 회개하여 정결함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4절에서 말씀하신 흰 옷을 입고 사는 사람입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5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매 순간마다 주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