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계4장-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라

  • 느헤미야강
  • 201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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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새벽기도회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라<4:1-11>

 

요한계시록이 쓰였던 당시, 로마 제국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세력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교회는 너무나 초라한 존재였습니다.

게다가 유대교와 온갖 미신들, 음란하고 탐욕적인 사회 풍조로

교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일곱 교회 중에 주님으로부터 칭찬만 받은 교회는 두 곳밖에 없었고

나머지 다섯 교회는 꾸중을 받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서서히 굴복해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편지를 보내시면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회개하라”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어려운 환경에서 겨우 믿음을 지켜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가혹하게 들리는 말씀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타협하지 말라.”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편지에 이어 요한의 눈을 들어 하늘을 열어 보여 주셨습니다.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당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늘이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이 그 곳에서 오셨고

다시 올라간 곳이며 천상의 존재들이 있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거하며 성도들이 올라갈 곳입니다.

요한이 그 하늘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하나님과 그 앉으신 보좌였습니다.

2, ...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하늘에 보좌가 하나 놓여 있고, 그 보좌에 한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이것이 요한이 본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요, 요한 계시록의 핵심 주제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십니다.’ 이것이 정말이라면

우리가 가진 모든 두려움과 갈등, 절망이 다 사라집니다.

 

요한은 하나님과 그 보좌가 있는 하늘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요한은 보석을 보았고, 스물네 보좌와 스물네 장로들을 보았고,

일곱 횃불과 유리 바다와 네 생물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한결같이 환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요한이 하늘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늘나라의 정확한 모습이 지금 우리가 알도록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환상의 의미를 해석해 보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환상은 환상 그대로 읽는 것도 필요합니다.

해석하려는 순간 요한이 정말 말하려는 것을 놓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말하려는 것은 단순합니다.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런 하나님이 계시며,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니 그렇게 커 보이는 로마와 황제와 세상 영광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은 실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돈 버는 방법이나 자녀 공부시키는 방법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영생이 있음을 증거 해 줍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보다 더 실생활에 중요한 요소가 어디 있겠습니까?

돈 버는 것, 아이들 좋은학교 보내는 것과 하나님의 존재가 비교가 됩니까?

인간의 현실을 보면 실망스럽고 낙심되고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하늘에는 찬양과 경배, 기쁨이 충만합니다.

성도의 장례식은 슬픔이 가득하지만 천상에서는 성도를 맞이하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것을 바라보니 장례식에서 찬양하고 예배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땅에는 사탄이 역사하고 탄식이 가득하지만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주위에 있는 천상의 존재들이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8, ... 그리고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 고백은 당시 사람들이 예배하던 로마 황제와 하나님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니 로마 황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요한은 당시 세상과 교회 문제로 크게 낙심해 있었지만,

하늘을 보는 순간 두려움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앞으로 될 일까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그러나 솔직히 많은 성도들은 요한이 보았다는 하늘에 대한 증언을 읽고도 별로 감동이 없습니다.

자신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충분함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삼층천에 올라가 본 사람입니다.

고후 12:2, 개정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 놀라운 간증을 너무나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았으니 증언은 하지만 그것은 보통 믿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하늘에 올라갔다 온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에 가시가 생겼습니다.

이유는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체험을 의지하여 믿으려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체험이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늘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그렇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도 사도 바울도 다 성령에 사로잡혀 하늘을 본 사람들입니다.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요한 안에 역사하신 성령은 지금 저와 여러분 안에 임하여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은 성령으로 눈이 열려 하나님의 보좌와 그 앞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보았습니다.

우리도 지금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예배하지만 영으로는 하늘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의 책 [주님과 동행하십니까?]에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영국에 있는 링컨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건물은 길이가 거의 210m나 되는 큰 건물이었고 예배당 중앙에는 오르간이 있었습니다.

성가대와 예배를 집전하는 사제들은 모두 멋진 가운을 입고 있었습니다.

후안 목사는 예배를 드리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 예배당도 웅장하고 정말 멋있는 예배구나!'

그 순간은 경건한 기도가 절로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가장 높은 곳에 좌정해 계신 우리의 아버지시여, 오늘 아침 우리는 주의 존전에 모였습니다.”

그때 주님이 책망하셨습니다.

닥쳐라. 너와 나는 온종일 대화를 나누며 지내고 있는데,

이제 와서 가장 높은 곳에 좌정해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우리는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규모적인 면에서 큰 교회는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교회와 이곳의 대형교회라 하는 곳은 다를까요?

겉모양이나 규모에는 차이가 있지만 교회인 것은 똑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이곳에서의 예배가 천상의 예배와는 아무래도 차이가 많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 것은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 교인 수나 크고 화려한 건물이나 화려한 예배 순서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만 들은 서머나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요즘으로 말하면 대형교회가 아니라

작고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니 예배도 평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교회에 칭찬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배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배가 하늘의 열린 문이고, 찬양은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늘을 보면서 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24장로들이 예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천상의 존재로서 신구약의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이 예배할 때, 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자신의 면류관을 벗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10, 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서,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계신 분께 경배드리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내놓으면서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 앞에 정말 엎드리고 자신의 면류관을 벗어 하나님께 내어 드린다면

제대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합니까? 우리의 면류관입니다.

면류관을 벗는다는 말은 내가 내 인생의 임금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내 삶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는 것입니다.

 

왜 염려합니까? 왜 그렇게 낙심합니까?

왜 그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며 왜 그렇게 불만족스럽습니까?

자기 면류관을 벗지 않고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마다 허영심과 교만과 열등감이 있습니다.

나는 이만큼을 얻어야하고 이만큼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예배하고 있습니다.

”, “”, “나는”, “나는하며 자기 면류관을 움켜쥐고 있으니 영안이 열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마다 자신의 허영심, 자존심, 교만과 열등감을 다 던져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인생의 문제 · 신앙의 문제 · 땅의 문제가 있어도,

두렵지도 염려하지도 않고 부럽지도 낙심하지도 않게 됩니다.

지금 이 땅에서도 우리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만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을 예배하는 사람들 안에 임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인도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주님은 예배가 끝난 후 우리 손을 잡고 문제와 갈등이 있는 가정, 직장, 일터로 가십니다.

고단한 광야 같은 세상을 함께 동행 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매순간이 예배가 되고, 하늘을 바라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축복이요, 예배의 영광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음을 믿고 찬양하고 경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