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계 5장_어린 양을 보라

  • 느헤미야강
  •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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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새벽기도회

 

어린 양을 보라 <5:1-14>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하늘을 보는 눈을 열어주시려고 기록된 성경입니다.

하늘을 보는 눈이 열린 사람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없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요한을 사로잡아 하늘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하늘을 보며 너무나도 찬란한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으며 24 장로들과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드리는

장엄한 예배를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요한이 여전히 로마 제국을 두려워했겠습니까?

교회가 무너질까 걱정하였겠습니까?

 

5장에서는 요한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성도들의

구원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성령은 요한에게 하늘과 보좌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과정을 보여주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보는 순간 요한의 마음이 뛰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사모하던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어떻게 임하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두루마리는 7번이나 봉인되어 있어(일곱 인)

아무나 펼쳐볼 수 없게 되어있고,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것을 펼칠 사람이

보이지 않아 요한은 슬피 울었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속히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두루마리를 열어 그 심판을

집행할 이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답답하고 슬펐던 것입니다.

 

그 때 24 장로 중 하나가 요한에게 그 두루마리를 펼칠 분이

계심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요한은 하나님 바로 앞에 서 계신

어린 양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 양을 보는 순간 요한은 대번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십자가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6, “한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여기서 왜 하필이면 어린 양입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영광을 받고 계십니다. 만 왕의 왕이십니다.

온 세상의 심판주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죽임당한 어린 양의 모습으로 계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십자가가 복음의 영원한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영광의 몸을 입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도

손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있었고 옆구리에는 창 자국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재림해 오실 때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십자가의 흔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7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린 양에게 그 두루마리를 주십니다.

그것은 어린 양인 예수님이 온 세상의 심판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두루마리를 받아들자, 네 생물과 24 장로들이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어린 양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 하였습니다.

8, ”이 향은 곧 성도의 기도입니다.

성도들이 땅에서는 무시당하고 때로 멸시받고 핍박을 받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성도들의 기도가 금 대접에 고귀하게 담겨져

하나님 앞에 드려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24 장로는

어린 양 예수께 새 노래로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러자 수천수만의 천사들 또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찬양을 드리고 이어서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외치는 찬양이 들렸습니다.

이 장면을 기록하는 요한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어린 양 예수!’

우리에겐 어린 양 예수님이 계십니다.

어린 양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리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실패했을지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어린 양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까?

요한은 하늘에서 어린 양을 보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십자가를 보며 어린 양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복음의 내용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어린 양은 한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어린 양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구원의 복음도 생각해야 하지만

우리를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어주신 어린 양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가 충만하고 능력이 있고 열매가 풍성한 성도에게는

비밀스런 믿음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같은 교회를 다니고 옆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려도

삶이 다른 원인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께서 못살겠다고 보따리를 싼 적이 있었습니다.

외아들에게 집착하는 홀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힘들어서였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한 이야기 때문에 사모님은 그 자리에서 보따리를 풀었고

그 후 다시는 보따리를 싸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당신 힘든 것 다 압니다. 당신이 보따리를 싼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머니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작으면 떠나십시오.

그러나 어머니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거든 보따리를 푸세요.'

남편 목사님의 말을 듣고 사모님의 눈이 뜨였습니다.

그동안 시어머니 때문에 너무 힘들어 남편의 사랑을 잊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말을 듣고 남편의 사랑을

기억해내니 살 수 없을 것같이 보였던 어려움이 작아보였습니다.

 

더 큰 사랑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더 큰 사랑이 아니라 가장 큰 사랑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어린 양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무너뜨릴 고난과 어려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은 하늘에서 어린 양을 보았지만

우리도 지금 여기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볼 때마다 우리 또한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안에 주님의 사랑이 부어지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어린 양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보이고

어떤 처지와 형편에서도 어린 양 예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5장에는 어린 양 예수에 대한 네 생물과 24 장로와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의 찬양이 나옵니다. 9절에서 13절까지입니다.

이 가사에 곡조를 붙인 찬양이 있습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입니다

이 찬양 가사를 생각하면서 십자가의 어린 양 예수님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

모든 족속과 방언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우리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네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우리들을 나라와 제사장 삼아 주셨으니

우리는 주와 함께 이 땅에서 다스리리

죽임 당하신 어린 양

능력과 부와 지혜 힘과 존귀와 영광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