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계6장_정말 두려워 해야 할 것

  • 느헤미야강
  •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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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새벽기도회

 

정말로 두려워 해야 할 것 <6:1-17>

 

주님은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잘 아십니다.

그러나 고난을 면제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이기게 해 주십니다.

고난당한 자의 결과와 하늘의 더 큰 소망을 보여 주심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요한에게 하늘과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을 보여주시고

계시록 6장부터 18장까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세 가지 환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요한계시록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요한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시는 것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6장은 예수님께서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하나하나 떼실 때,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합니다. 1절에서 8절까지 네 봉인이 떼어지면서

말 탄 사람이 하나씩 등장합니다.

첫 번째 흰 말 탄 사람은 정복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 붉은 말 탄 사람은 민족들 사이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세 번째 검은 말 탄 사람은 세상에 기근이 들도록 역사하는 자를,

네 번째 청황색 말을 탄 사람은 칼과 기근과 유행병과 들짐승으로서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의 사분의 일을 죽이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심판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가 아닙니다.

그 심판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심판들이 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주관 아래 되고 있습니다.

모든 심판이 주님이 인을 떼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재앙의 내용도 정도도 다 주님이 지시한대로 됩니다.

심판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다섯 번째 봉인이 떼어질 때, 순교자들이 큰 소리로 탄원하는 기도가 들렸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

언제 우리가 흘린 피의 원한을 풀어 주시겠습니까?"

그 울부짖음에 대한 답변도 들렸습니다.

그것은 그들과 같이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아직도 더 쉬어야 한다” (:11) 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순교자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하나,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는 성도들의 억울함과 답답함이

다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으로도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앞으로도 성도의 고난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더 크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 제국의 무자비한 박해를 받았지만 200여년 후

로마 제국 전체가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핍박과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려면 고난을 견디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욕먹고 핍박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세례 받을 때 이 각오를 하고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힘들어 고난은 피하고

편안함만 찾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12절에서 14절까지는 여섯 번째 봉인이 떼어지는 순간

이 땅에는 엄청난 자연재해가 일어납니다.

12, “해는 검은 머리털로 짠 천과 같이 검게 되고,

달은 온통 피와 같이 되고, 13절 하늘의 별들은,

무화과나무가 거센 바람에 흔들려서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듯이, 떨어졌습니다

14절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듯이 사라지고,

모든 산과 섬은 제자리에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자연재해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 고관, 장군, 부자는 사람들이 다 꿈꾸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권력도, 돈도,

높은 지위도, 명예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회개도 못합니다. 죽으려해도 죽을 수도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뵙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동굴과 산의 바위들 틈에 숨어서, 산과 바위를 향하여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6), 숨겨달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말이 이제는 편하게 살고 싶다' 는 말입니다.

정말 무서운 유혹입니다. 인생에 편한 삶은 없기 때문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오래전 청년집회에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추구하는 풍요한 삶을 동경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비극적인 삶을 쫓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족, 좋은 직장, 즐거운 은퇴, 조개껍질 모으기가

전능하신 창조자 하나님 앞에 서기 전의 당신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창조주 앞에서 이것을 보십시오. 제 집을 보십시오. 제 차를 보십시오.

제 몸을 보십시오. 제가 모은 이 조개껍질들을 보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여러분, 삶을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편안한 것과 대접받고 높아지는 것을 추구할 때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고난의 길을 각오하고 살아야할 때입니다.

 

9절에 보니 순교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말한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이들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면 누가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죽음을 피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이들이 있습니다.

계시록이 쓰여지던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자 밥이 되고 톱으로 켬을 당하고 또 목 베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어쩔 수 없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 믿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것입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졌던 것일까요?

하늘을 보는 눈이 열리고 고난당하는 자의 마지막 결과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지만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았고 돌 던지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유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순교의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의 신앙과 삶,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순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순교가 복이라 여겨질 정도의 더 큰 은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12-13절에서 불시험을 즐거워하라 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현재 고난은 장차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8:18)고 했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면 즐거워하라(5:11-12)고 하셨습니다.

싫지만 유익한 것이 있습니다. 고난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영적인 눈이 뜨였느냐, 하늘을 보고 주님을 보고

고난당한 성도들의 마지막이 어떤지 보는 눈이 열렸느냐 이지

고난이냐 편안함이냐 가 아닙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이 목회하시는 쓰레기 마을에 사는

 61세 된 엘리자베스라는 여 성도는 가난하고 여러 손자를 부양하는 고단한 노인인데

주일예배 때, 간증하면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더랍니다.

내 이름은 엘리자베스가 아닙니다. 내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복음을 알게 된 순간 저는 더 이상 쓰레기 마을에 사는 가난한 노인도

손자들을 먹여 살려야하는 고달픈 노인도 아닌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다 각각 있겠지만 여러분의 이름도 다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그저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적당하게 붙잡고 있으니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고난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고난을 외면하고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죽기 살기로 예수님을 붙잡고

주님만 바라보며 살면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