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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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1장_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 느헤미야강
  •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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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1() 새벽기도회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11;1-19)

 

주님은 계 10장에서 요한에게 말씀을 먹으라.” 하셨는데,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1장에서는 바로 그 증인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요한에게 증인에 대하여 보여주시기 전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측량하라, 세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아무리 교회가 위기에 처한다 하더라도

그 원형이요 실상인 성전이 하늘에 있음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알고 보호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하늘에 있는 성전과 같이

거룩하고 정결한 교회인가만 신경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키시는 가장 안전한 교회입니다.

우리는 오직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전 바깥뜰은 이방 사람들에게 내주었으니

측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

이 땅의 교회에 무서운 미혹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말 것은 하나님이 정한 기간 동안만

그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36개월 동안이라고 했습니다.

36개월은 상징적인 수로서 하나님이 정한 기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때, 상복을 입고 예언할 증인 둘이 나타납니다.

이 두 증인은 영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변함없이 거룩한 교회,

거룩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사명은 마지막 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명을 감당할 동안, 어떤 훼방하는 세력도 제압할 큰 권세가

주어집니다. 이것은 이미 주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성령 받은 우리 모두는 이미 증인임을 알게 됩니다.

믿느냐 안 믿느냐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 흘리시고 죽으셨던 예수님의 마음은

온통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질병도, 가난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이라면

굳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해내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마음도 똑같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환란의 때, 미혹의 때,

누가 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전하는 자가 없다면 그들이 어떻게 회개하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되려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이 "천이백육십일 동안" 예언한다는 말은

상징적인 수로서 하나님이 정한 기간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정한 기간동안 사명을 다할 때까지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 기간이 끝나면 무저갱에서 한 짐승이 나타나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7).

그들의 시체는 소돔 또는 이집트라고 불리는 곳에 버려질 것인데,

그 곳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입니다(8).

모든 나라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그들의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땅에 묻지 않고 지켜볼 것입니다(9).

이것은 교회가 주님처럼 순교를 당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님도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력하게 죽임 당하신 것처럼

교회도 때가 되면 그렇게 죽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땅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죽음을 기뻐할 것입니다.

이 두 증인이 그들을 괴롭게 했기 때문입니다(10).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처럼,

사흘 반 후에, 하나님께서 그 두 증인에게 생명의 영을 불어넣으셔서

그들은 제 발로 일어서고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 떨게 됩니다(11).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증인에게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므로 편안히 살기만 바라다가 고난의 증인이 부활의 영광을 얻을 때,

부러워하고 박수만 칠 것인가? 아니면 주님 오실 때,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달려갈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부활한 증인들이 승천할 때, 땅에는 큰 지진이 일어나는데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인데,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고난 중에도 거룩한 교회와 성도들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한 사람의 죄인이라도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이 울립니다.

계시록 11:14 “둘째 화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셋째 화가 곧 닥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요한에게 마지막 재앙을 보여주시기 전에

그 후에 이루어질 영광을 먼저 보여주십니다.

15,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이 구절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핵심 구절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다스리며

영원히 왕 노릇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분명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심히 두려운 재앙 중에도 길을 잃지 않고

고난을 당하여도 힘을 잃지 않게 됩니다.

이에 24 장로들이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구원의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18).

그들에게는 심판 뿐입니다. 회개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는 두 부류의 사람 밖에 없습니다.

상 받는 사람과 멸망당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설교를 준비하는 제 마음에 애통함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교인들이 둘로 갈라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이제는 고난을 당할지라도 증인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들었지만 여전히

편안한 삶만 바라고 증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자신이 상 받는 사람은 되지 못하겠지만

멸망당할 사람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두 부류 밖에 없습니다.

구경하고 박수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깨우쳐 주실 분이 성령님 뿐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역사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증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증인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증인이 전해야 할 말씀은 하나님 나라 복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다시 한 번 요한에게 하늘의 성전을 보여주십니다.

19,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꿈꾸지도, 상상하지도 못하던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온갖 더럽고 악한 일들은 다 사라지고 모든 눈물, 질병, 싸움,

죽음이 없어지고 정의와 사랑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세상을 송아지와 사자가 함께 뒹굴며 놀고,

어린아이가 뱀의 굴에 손을 집어넣어도 아무런 해가 없는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영광을 모르고 세상 만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증인을 찾고 있습니다. 교회만 다니는 사람,

말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증인을 보고 싶어 합니다.

내 주위에 그런 증인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 증인의 첫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사모할 것은 증인의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증인으로 살려면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전도가 죽기보다 싫지는 않습니까?

오늘 예배는 내가 증인으로서 드리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증인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하루 되시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