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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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0장_영적몸살과 의인의 삶

  • 느헤미야강
  •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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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3() 새벽기도회

 

영적몸살과 의인의 삶 <10:1-39>

 

예수님을 바로 믿는다는 것,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0장은 세 가지 증거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속죄의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째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도

이런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셔서 복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반복해서 드리는 똑같은 희생제사로써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속죄의 확신조차 갖게 하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2절 말씀대로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더라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한 번 깨끗하여진 뒤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제사 드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겠습니까?

속죄 제사를 제대로 드렸다면 죄를 범하는 것을 반복하지 않고,

점점 거룩한 백성이 되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다워지기 보다

밤낮 없이 속죄제사만 드리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속죄 제사 마저 아무런 회개없이 드리고 형식적인 제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제사장이 타락하여 병든 짐승을 잡아 바치기도 하고 제물을 가지고

돈버는 장사꾼이 되기도 하니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죄 제사를 싫어하셨습니다.

5-6...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

주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

이 말씀은 구약 예언서에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

1:12-13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이처럼 예배드리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앉아 있으면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중심과 한 주간의 삶을 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율법적 신앙생활에서 건져주시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보배같은 피를 흘려 주신 것입니다.

 

9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사함의 확신을 갖고, 거룩한 삶을 살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성령 하나님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5-17절 성령도 우리에게 증언하여 주십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피를 증거하십니다.

주님의 보혈을 믿는 자에게는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죄사함의

확신을 주십니다. 18절은 다시는 죄 때문에 제사를 드릴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것 깨닫는 자마다 주님과 동행하하게 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상황과 여건이 변하여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유혹 앞에서도 핍박 앞에서도 우리는 믿음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게 주시는 도전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죄사함의 확신을 주시고 거룩하게 살기를 기대하신다면

성령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죄사함에 대한 평안은 있으나

거룩한 삶에 대해서는 불편함이 있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니 영적 부딪침흐로 불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전혀 불편함이 없이 사셨다면 잘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안에 계심에도 의식하지 않으니 오히려 불편하신 겁니다!

우리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완전 무시당하고 사신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누가 집에 들어가 함께 사는데, 인사도 대접도 배려도 하지 않으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로버트 멍어가 쓴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에 보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지만

정말 마음에 주님으로 모시고 살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마음에 주님으로

영접한 다음에 예수님과 함께 자신의 집 여기저기를 다니는 장면이 나옵니다.

서재에 들어갔다가 예수님께는 차마 보여드릴 수 없는 책과 잡지,

벽에 걸린 그림 때문에 당황해 합니다.

주방에 가서는 주님께 대접해 드릴 마땅한 것이 없습니다.

거실에서는 주님과 함께 볼 수 없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살았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오락에 빠져 산 것을 깨달았습니다.

친구들과 놀러가면서 도무지 예수님을 모시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침실에서의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주님께 도저히 보여드릴 수 없는 방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삐 출근하다 문득 누가 혼자 거실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이셨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님께 다가가 주님, 아침마다 늘 여기에 오셨습니까?”

그럼.”하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주님을 손님처럼도 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담대함과 기쁨과 행복은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르게 믿고 살아가는데에는 영적 몸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되어 살다가 예수님이 주인이신 삶을 살려니 익숙치 않습니다.

에베소서 317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터가 굳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이 힘이 듭니다. 그것은 힘들기도 한 일지만

그 다음의 약속이 너무나 놀라운 것입니다.

3:18-19,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항상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 예수님과 동행하며,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삶을 사는 것은 죽고 다시 사는것입니다.

몸살을 앓는 과정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은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믿는 자는 어떤 고난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32-34 여러분은 빛을 받은 뒤에, 고난의 싸움을 많이 견디어 낸

그 처음 시절을 되새기십시오. 여러분은 때로는 모욕과 환난을 당하여,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또한 자기 소유를 빼앗기는 일이 있어도, 그보다 더 좋고 더 영구한

재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 일을 기쁘게 당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38절에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그렇게 믿음을 정의합니다.

믿음은 살아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의롭게 살아진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아지는 것입니다.

핍박과 고난중에서도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죄사함의 확신과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에 응답하시고

주님과 함께 하심이 결코 불편하지 않음을 고백하고

내안에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영적 몸살도 겪으시고 이기시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