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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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1장_찬송하리로다

  • 느헤미야강
  •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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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6() 새벽기도회

 

찬송하리로다 <베드로전서 1;3-7>

 

베드로전서는 네로 혹은 가장 극심한 도미티안 황제를 전후한

그리스도인들의 대 박해 시점에 쓰여진 책입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역 북쪽 지방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베드로는 실라(실루아노)를 통해서 쓴 편지입니다(5:12).

베드로전서는 고난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의 행동 원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적인 주위 세계에 험담의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통하여 모든 비방을 침묵시킬 수 있어야 한다(2:12,15). 

그리스도인들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서”(3:14)

자신들에게 닥치는 억울한 일을 기꺼이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베드로는 거듭해서 예수님을 모범으로 제시합니다(2:21~25; 3:18~22).

예수님은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3:18) 고난을 당하셨으며,

그의 상처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나음을 입게 되었다(2:24).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예수님을 뒤따르려고 할 때

잠깐 고난을 당할 수 있다(1:6; 5:10).

그러나 종말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그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 확실하다고 말씀합니다(1:8; 4:13).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제가 주목한 말씀은 두 단어입니다.

흩어진 나그네’(1)찬양하리로다’(3)입니다.

 

1. 베드로 사도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앙의 원리를 가리키고자 쓰면서 그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했습니다.

2:11절에도 보면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실제적으로 당시 곳곳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은 나그네같은 인생들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땅을 사는 우리 성도들은 나그네들입니다.

우리가 나그네이기에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간직한 영원한 하나님 나라,

새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베드로 사도가 박해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너희는 흩어진 나그네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스페인 하숙이라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하루 숙박을 하며 음식을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순례길을 걷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숙박하면서 음식을 먹는 그 쉼과 안식은

 순례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아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나그네요 순례자라는 정체성은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이 목적지요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출발한 곳이요 다시금 가야할 하나님나라가 목적지라는 말입니다.

나그네 길에서 겪게 되는 수 많은 어려움, 혹은 즐거움이 있으나

그것 때문에 길에 주저앉지는 않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 알게 되면 나그네길이 어려워도, 즐거움 가득해도

거기에 소망을 걸지 않게 됩니다.

 

히브리서 11:13-16절이 증거해 주는 바가 이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그들은 다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이 땅에서는 외국인이요,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 새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소망하며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마땅한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인사말을 하고나서 찬송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찬송할때에는 나에게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 경우입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의 찬송은 우리의 내용과 다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4절을 보면, ‘베드로가 찬송하는 내용은 많은 긍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거듭남, 산 소망,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늘의 기업 등으로 인해서감격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찬송에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전부 영적인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은 자라면

이 말씀을 인하여 찬송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찬송의 이유과 근거를 이렇게 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하나님 아버지입니까?

요한복음 1:18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나타내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요한복음 10:30절에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17절은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 되심을 말씀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내 아버지를 너희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을 믿는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큰 감격이 되어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을 알기에

복음의 말씀을 증거 하기도 전에 감격하여 찬송이 먼저 터져 나온 것입니다.

 

또 찬송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3)

베드로 사도가 찬송하는 이 산 소망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간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성취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런 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는 이 땅에서 핍박을 받을 수 있으나

소망 때문에 감사의 찬송이 터져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늘 유업을 잇게 하셨습니다(4).

 

그러면서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시험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5-7절을 보면, 말세가 되면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근심하지 않을 수 없으나 곧 기뻐하게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능력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란 환난 중에서도 찬송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시련이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입니다.

떠나온 곳이 있고,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순례자입니다.

돌아가야 할 본향은 하나님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소망인 사람은 고난앞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으며

즐거움이 아무리 많아도 교만하지 않으며 살수 있습니다.

내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의 크기와 넓이가

어떤것인지 알면 우리도 베드로가 고백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자기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것들을 인하여 찬송하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베드로의 가슴 속에 있는

 그 찬송을 우리들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십자가의 피뿌림을 통해 

당신의 자녀 삼으신 그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오직 우리 주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베드로가 되새겨 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흩어진 나그네!

찬송하리로다!

이것이 박해받은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이요 베드로 사도의 권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