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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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4장_미혹케 하는 영

  • 느헤미야강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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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2() 새벽기도회

  

미혹케 하는 영 <딤전4;1-5>

 

디모데전서 4장에서는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의 말씀을 다루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은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하는 자들,

한마디로 이단을 조심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이단은 그들의 인격과 가르침을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인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리에 대한 문제입니다.

행동이나 인격이 건전해 보이나 잘못된 것을 가르침을 가르친다면

잘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1,2)

바울은 잘못된 가르침의 배후에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이 있음을 말합니다.

아무리 건전한 행동을 하는 무리라 해도 그들의 가르침이

성경을 왜곡하는 것일 경우 그 배후에 악한 영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결국 영적인 싸움입니다.

 

본문에는 미혹케 하는 영의 세력들이 세가지 특징이 나옵니다.


첫째, 믿음에서 떠나(1)

바울은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을 것임을 경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처음부터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함께 믿는다고 하는 자들 안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딤후4;3,4절을 보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사람들은 자기사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소리,

개인적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분좋은 소리를 좋아합니다.

사단은 인간의 이러한 결정적인 약점을 이용해서 우리를 미혹합니다.


둘째,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2)

양심이 화인을 맞았다라는 말은 양심이 마비가 된 것을 말하는 것이고,

외식함으로는 위선적이고 일관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양심이란 그 사람의 인격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화인은 옛날에 노예들이 도망가다가 붙잡히면 인두를 불에 달구어

이마에 지져버려 지워지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화인은 지울 수가 없는 것습니다.

그 결과 외식으로 나타납니다.

위선적이고 일관성이 없는 모습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거짓말함입니다.

양심에 화인맞으면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

자기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특징입니다.

 

당시에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이들이 영지주의입니다.

이들은 당시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영혼과 육체를

나누어 생각하는 이원론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영혼만이 깨끗하고 거룩하며 육체는 악한 것이다.

이것이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로 나타났습니다.

자기를 절제하면서 더러운 육체를 억압하면 억합할수록

영혼이 깨끗해진다는 것이 금욕주의입니다.

모든 고행, 수행, 단전, 요가 등이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쾌락주의는 더러운 육체는 아무리 노력해도 선해지거나

거룩해질 가능성이 없다고 믿습니다.

육체는 그냥 두어도 영혼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쾌락을 즐기는 쾌락주의가 나왔습니다.

두 가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이러한 주장이라면 예수님이 육체의 모습으로 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메시야됨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분이 악한 물질 안에 오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영지주의의 한 형태인 금욕주의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고,

디모데후서는 영지주의 한 형태인 쾌락주의에 대한 경고 말씀입니다.

 

본문의 바울의 경고는 금욕주의에 대한 경계말씀입니다.

거짓교사들은 3절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첫 번째가 결혼을 금했습니다.

거짓교사, 이단자들은 육체에 관련한 모든 것을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보다 신부가 더 거룩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를 결혼을 안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오해이고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것이 선합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남자를 창조하심으로 창조의 절정을 이루셨고, 여자를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룰 수 있게 함으로 결혼을 축복하셨습니다.

성경은 육체를 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내 육체에는 선한 것이 전혀 없다는 말는 이 육체가 몸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죄를 지으려는 성향, 악한 것을 좋아하는 경향,

부패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육체 자체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거룩은 장소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 거룩하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있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두 번째, 식물을 폐함입니다.

이들은 특정한 음식들만 먹고 나머지 음식들은 절대로 먹지 못하게 하는

극단적인 금식을 강조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거룩함을 어떤 음식을 먹느냐 안 먹느냐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4절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했습니다.

어떤 음식이 독이 아닌 이상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의 거룩함의 길은 무엇입니까?

결혼을 안 한다든지, 음식을 삼간다든지 하는 외적인 형태애 의해

인간이 거룩해진다고 주장하던 이단자들에게

바울은 거룩에 이르는 길에 대해 말하고 결론을 맺습니다.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성도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함을 입는 자로써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세속적인 차원과 영적인 차원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동기와 목적에 달려 있습니다.

, 어떤 태도로, 무엇을 위해서 먹느냐 라는 동기와 목적에 따라서

그 사람이 세속적인지 영적인지 결정됩니다.

 

고전10;31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하라”.

 

먹고 마시는 것이 세속적이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아무런 동기없이

생존만을 위해 먹고 마실 때 그것은 세속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머곡 마시면 그것은 거룩한 것입니다.

예배나 찬송이나 기도처럼 거룩한 행위입니다.

내가 이것을 먹고 마시고 힘을 얻어서 오늘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이 사역을 잘 감당해야지 라는

분명한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먹고 마신다면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일입니다.

 

이것은 결혼문제도 동일합니다.

결혼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결혼하느냐가

그 사람의 세속성과 영성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배필과 아름다운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가정을 이끌어 갈 때

그것을 아름답고 축복된 결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무엇을 먹고 안 먹는 것에 의해 거룩함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집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식사하기 전에, 무엇을 먹기 전에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도 식사전에 기도합니다.

말씀을 읽은 습관을 우리들이 적용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영적 가장이 하루 동안 마음에 새길 말씀 한 구절을 읽고,

가족들 전체가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요?

매일 식사 시간마다 가족들이 따로 자기가 원하는

성경 구절을 택해서 읽고 기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오늘도 음식을 먹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오늘도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오늘도 이 자리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단 한 번의 삶의 기회,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이 삶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려 합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일에

여러분의 삶이 도구로 쓰여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절실한 마음의 동기를 가지고 하루 하루 살고 있다면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일이 거룩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앞에

마음으로 아멘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 일은 거룩한 일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을 선하게 감당하기 위하여,

내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진정한 유익을 제공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삶을 증거하기 위하여,

가족들을 효과적으로 도우며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키우기 위하여

오늘도 일터에서 땀을 흘리고 일하고 섬기고 노력하였다면

그것이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 내 삶의 동기를, 내 삶의 목적을

다시 한 번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이 새벽에 결단하시고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