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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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4장_말씀 전파와 선한싸움

  • 느헤미야강
  •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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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3() 새벽기도회

 

말씀전파와 선한 싸움 <딤후 4:1-5>

 

41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과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실 예수님의 권위를 앞세워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할 것을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1절 이하의 말씀은 자신의 죽음을 앞둔 유언적인 명령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과 산 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신 그리스도앞에서 명령합니다.

성도라면 마땅히 인정할 최고의 권위앞에서 명령한다는 것은 

말씀 전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뜻합니다.

이처럼 엄청난 권위를 동원해서 부탁하고 명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입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어떤 뜻입니까?

바울이 말하는 말씀전파는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책하며라는 말은 헬라어로 ‘ejlevgcw’(엘렝코)라는 말인데

허물을 분명히 알게 하고 그것을 바로 잡아 주는 것을 말합니다.

경계하며라는 말은 헬라어로 ‘ejpitimavw’(에피티마오)라는 말인데

죄인을 책망하며 엄히 꾸짖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권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parakalevw’(파라칼레오)라는 말인데

죄인을 책망하되 곧 위로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세의 특징은 자기 사랑이라 했습니다.

오직 자기 만족과 기쁨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바른 교훈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를 기쁘게 해 줄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자신을 경책하고 경계하며 권하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아하겠습니까?

이러한 때에 어떻게 교회가 사람을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4절 말씀에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했습니다.

말세의 특징은 노골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모든 권위가 무시당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모든 가치관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다고 하여도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충족시켜주는

그런 스승을 많이 둡니다.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말씀을 증거 하기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고, 범사에 오래 참고,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명합니다.

이 말씀은 디모데가 전도인의 직무를 다 하고자 할 때

필히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고자 하기보다 자기의 사욕을 채워줄

허탄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고난은 단순히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으로부터 그러한 배척과 고난을 받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말하는 교회가 바른 교훈으로부터 귀가 멀어져 있는 것이

당시의 실상이었고, 또한 오늘날 우리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말씀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말씀 앞에 책망을 받고,

말씀을 사모하는 시대에는 항상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곧 교회 가운데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관심과

초점을 맞추면 언제나 타락의 길로 달려갔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 우리교회,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책망을 받고 경책을 받아서 돌이키기를 좋아합니까?

아니면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귀를 즐겁게 하고

나의 욕심을 채워주는 것을 좋아합니까?

오늘날은 오직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서 사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자들조차도

점점 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기 사욕을 채워줄

허탄한 이야기, 세상 방식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증거 하기보다는

교회를 어떻게 하면 크게 키울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교회 성장세미나, 성장 프로그램이 유행입니다.

숫적 성장도 중요하나 그것에만 과심이 있는 이 시대에 엄청난 권위로

디모데에게 명하는 바울 사도의 명령을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으로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전도인의 직무를 다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일을

감당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일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기도하고 말씀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의 본의를 드러내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 가운데 깨어 있을 때

이 세상의 죄악의 관영함과 자신의 죄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우리 주님을 소망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7-8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마쳤기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만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의 때가 있습니다.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일에 마땅히 힘써야 합니다.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앞에 설 것을 소망하며

말씀을 전파하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복된 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끝으로 9절이하는 바울이 기억된 바 여러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한가지 특징은 자신과 친한, 잘해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중심이 하나님과 복음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들이나

하나님의 기억은 하나님나라와 복음입니다.

무엇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억되면 좋을까요?

복음 때문에 수고한 일 때문에,

복음으로 고난당함을 기뻐한 일 때문에,

복음을 위해 사랑하고, 수고하며, 희생한 까닭에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