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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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3장_ 그래도 교회가 희망입니다

  • 느헤미야강
  • 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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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새벽기도회

 

그래도 교회가 희망입니다 <3:8-15>


바울 사도는 가는 곳마다 자기 주변에 항상 신뢰할 만한

동역자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전도 여행을 다닐 때도 누군가를 꼭 동반했습니다.

때로는 디모데와, 때로는 바나바와 마가와, 본문에서는 디도와 함께 다녔습니다.

일정 기간 바울은 지중해 연안의 큰 섬 중에 하나였던 그레데에

디도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예수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말씀으로 세우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당시 알려진 전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자 하는

큰 비전과 꿈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맡기신

새로운 사역지를 향해서 떠나게 됩니다.

떠나가면서 그는 함께 동역했던 디도를 이 그레데 섬에 남겨 놓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1;5).

첫째, 두 사람(바울, 디도)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된

그레데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양육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 이제 막 세워진 그레데 교회를 좀더 견고하게 세우는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의 후임자로서 디도를 그곳에 남겨 둔 것입니다.

 

저는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 섬에 남겨 둔 두 가지 목적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전생애를 통하여 거둘 수 있는

가장 큰 두 가지 보람을 발견했습니다.

세상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무엇보다 소중한 보람 중에 하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계속해서 주님 안에서 자라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성취하고 많은 것을 남긴다 해도

우리의 삶이 끝나는 그 순간에, 이 세상에서 남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회고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나에게는 󰡒디도󰡓가 있는가? 󰡒디모데󰡓가 있는가?

내 생애를 통해서 한두 사람이라도 신앙적으로 깊이 영향을 끼쳐서,

복음을 가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키웠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디도서 전체를 통해서 바울은 디도로 하여금

복음을 전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잘 돌보아 주도록 격려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그레데 섬에서 예수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세운

이 어린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길 원하는 바울의 애타는 심정이

디도서 전체를 통해서 면면이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세계 복음화에, 세계를 바꾸는 사역에서

심장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주님을 알고 복음을 맛본 사람들에게는 내가 복음을 전하고

양육한 사람들이 성장하여 주님의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김을 통해

그 교회가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회로 성장해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귀한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나간 후에 그레데 섬의 이 어린 교회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교회 안에서 발생한 이단과 관련한 논쟁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에는 어리석은 변론, 족보 이야기, 분쟁, 율법에 대한 다툼입니다.

어리석은 변론이란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채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족보 이야기는 구약시대의 여러 인물들에 대해 성경이 말하지 않은 신화같은

이야기들을 상상으로 꾸며대고 그것을 가지고 파벌을 만든 것을 말합니다.

어리석은 변론과 파벌은 서로간에 분쟁을 초래했습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는 말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얻는다는 율법주의를 피하고, 율법으로

구원받지 않으니 율법이나 계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이 없다는 율법주의주도 피하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보면서 그레데 교회 안에 있었던 위기의 원인을

두 가지로 분석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성도들간의 교제가 실패했고,

둘째로, `우리가 정말로 믿어야 할 진정한 교리가 무엇인가?'라는

교리적인 교육에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그레데 교회 안에 찾아온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첫째로, 무익한 논쟁을 지양하고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나눌 수 있는

나눔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8,9).

바울은 정말 유익한 것이란,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여

그들이 새로워져서 주님의 인격으로 닮아가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선한일을 하도록 우리의 모든 일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레데교회 사람들은 근거도 없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자꾸만 자기의 의견을 내세우거나 성경적인 분명한 율법의 가르침을 떠나서

왜곡된 가르침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다 보니 그레데 교회안에 분열과 다툼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어떤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어거스틴은 대단히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본질적인 것에 관해서는 언제나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 관해서는 언제나 관용을... .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느냐?

예수님은 누구시냐?

나는 정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구원받음으로 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주님을 어떻게 닮아가고 있는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어떤 것인가?

이것은 신앙에서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아주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이것은 타협될 수도 없고 바뀌어져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이 아닌 비본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의견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계시하지 않아 해석의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서로의 이견을 수용하고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 우리가 에너지를 허비하게 되면

결국 불행한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유익하게 만들기 위하여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룰 것을 바울은 그레데 교회에 기대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교리의 순결을 지킬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10).

이 문제에 관해서 바울은 대단히 단호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10).

이단을 향해서는 토론이 아니라 󰡒훈계󰡓하라고 했습니다.

한두 번 훈계한 후에는 돌아서지 않으면 멀리해야 합니다.

이단으로 빠진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게 하던가, 아니면 그들을 떠나야 합니다.

잘못된 영향이 미치기 시작하면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순결한 공동체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열매 맺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12).

바울은 위기를 겪고 있는 그레데 교인들의 문제를 수습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서 사람들을 파견했습니다.

12절 아데마와 두기고를 보냅니다.

그리고 디도에게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했습니다.

디도가 이것을 수습하기에는 아직도 어리다고 판단한 바울이

그를 만나 믿음을 세워서 보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동안의 지도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아데마와 두기고라는 두 사람의 지도자를 그레데로 보냈습니다.

13절에는 율법교사 세나와 아볼로를 보냈습니다.

바울이 그레데 교회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아데마를 보내고 두기고를 보내고 또 세나를 보내고 아볼로를 보내고,

또 디도를 불러서 격려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레데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세워지도록

애쓰고 있는 바울의 뜨거운 심정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위해서 애쓰는 성도들의 공동체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져 가야 하는지 바울의 격려를 가슴속에 담고

우리의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을 그려 봅시다.

서로의 유익을 위한 나눔의 공동체,

교리적으로 순결한 공동체,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을 세워 주기 위해 계속 격려하는

뜨거운 사랑으로 뭉쳐진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