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빌레몬서1장_은헤와 평강

  • 느헤미야강
  •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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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9() 새벽기도회

 

은혜와 평강 <빌레몬서 1:1-3>

 

빌레몬서는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골로새에 살고있는

빌레몬과 동역자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빌레몬서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빌레몬은 골로새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집에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어떤 해를 끼치고 로마로 도망을 갔습니다(11).

이런 그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계속에서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빌레몬서 전체적으로 보면 오네시모를 용서해주어야 할 빌레몬,

주인에게 용서 받아야 할 종 오네시모,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바울 세 사람이 주요인물입니다.

서로 하나될 수 없는 이들이 하나됨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될 수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입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과 그 감옥에서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있도록 인사하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비록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고생이 크면 클수록

나중에 성공은 더 크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간증들과 설교들을 들어보면 거의가 고진감래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괴로움 속에서도 주님을 위하여 참고 견디며 충성을

다하였더니 결국은 이렇게 세상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들입니다.

사업에 성공하고, 집안이 잘되고, 자식들이 원하는 대학에 붙고,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는 간증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자리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살고 있는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사는지는 침묵합니다.

성경에서 주님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부자입니다.

그렇다고 부자되었다는 이야기가 성경의 강조하는 바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언약이 어떻게 세대를 이어 흘러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에 대하여 증거 하고 있습니다.

이복이 진짜 복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 신약으로 구약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약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며

하나님의 일하심이 무엇을 위하여 일하시는가를 보게 됩니다.

 

성경에서 주님을 위하여 산 사람들의 결과는 어떤 모습입니까?

핍박과 환난과 순교의 행진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매 맞고 유리하며 다녔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치고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까?

주를 위하여 죽었는데 무엇이 남았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남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남긴 것입니다.

이것이 주를 위하여 산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은 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성경에서 바울만큼 수고하고 애쓴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어떤 사도들보다 더 힘을 다하여 주를 섬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감옥에 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만나고 주를 위하여 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믿고있는 방식으로 계속 예수를 믿어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우리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께서 원하시고 좋아하시는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좋은 것을 주십니다.

좋은 것이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주심이 왜 복입니까?

성령이 임하면 죄를 깨닫고 예수를 믿습니다. 자기 부인의 길을 걷습니다.

그 길은 실패를 경험하고 무안하다고 만물의 찌끼같은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감사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지는 신령한 복이 세상의 환난과 핍박과

죽음조차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편지를 쓰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에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시고 때가 되어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하늘의 기업을 받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엄청나고 대단한지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알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감옥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갇혀있을때에 하나님께서 꺼내어 주셨습니다.

바울도 꺼내어주시면 더 좋을 듯 합니다.

그런데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미 하늘의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몸은 감옥에 있어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감옥이 의미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어떤 인사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따라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찌어다.”(3)

감옥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감옥에 있으면서 은혜와 평강을 바란다고 합니다.

 

나누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바울이 누린 이러한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까?

감옥은커녕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불평과 불만이 나오지 않습니까?

주일이 되면 선풍기 바람 때문에 은근히 신경쓰이는 일이 많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들로 인하여 분노가 폭발하지 않습니까?

주를 위하기는커녕 거저 내 기분과 내 만족에 미흡하면

모든 것이 싫고 짜증스럽지 않습니까?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하나님조차

나를 위하여 주면 좋지만 나를 조금이라고 불편하게 하면

은혜고 평강이고 다 날아 가버리고 분노만 가득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 아닙니까?

 

사도바울의 인사말 하나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서 얼마나 먼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에게 임했던 그 은혜와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저 역시 몇 주간동안 은혜와 평강을 잃어버린채 살아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과 사람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네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더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바울이 믿는 예수를 믿으며,

바울에게 주신 은혜와 평강을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