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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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4장_참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 느헤미야강
  • 2019-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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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3() 새벽기도회

 

참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4;1-11>

 

히브리서의 계속되는 강조점은 율법과 복음, 모세와 예수를 대조하고,

새언약과 옛언약을 대조해서, 우리가 얼마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특권과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 하는것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보다 얼마나 더 큰 책임이 따르는가 하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1. 이스라엘과 우리의 동일함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책임 문제와 관련하여서 그들의 불신앙과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이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직접적인 경고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경고가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우하신 대로

동일하게 우리를 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비 없는 심판을 내리셨고, 우리는 은혜 아래 있으니

보다 관대하게 우리를 대우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큰 책임이 있으면 있었지 적지 않다.

구원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이나 우리나 똑같다는 것이

오늘 히브리서 본문의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4:2)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우리나 동일한 복음을 전함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받았고, 우리는 복음을 받았고... 그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스라엘도 동일하게 복음을 전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죄사함 받고

출애굽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2절과 3절에서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으며, 만나를 먹고 반석의 물을 마심으로 성찬에 참여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고,

장차 안식의 땅,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고,

우리는 시온산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산상수훈이라는 율법을 수여받았습니다.

이 산상수훈이라는 율법은 시내산 율법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높은 수준의 율법입니다.

시내산의 율법은 그냥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했다고 말씀하셨고,

시내산 율법은 그냥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고 말씀하셨고,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내산의 율법만 우리에게 순종하면 복을 주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시온산의 법인 산상수훈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만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율법보다 더 높은 차원의,

아니 완전한 차원의 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산상수훈의 말씀 앞에서 일차적으로

내가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습니다.

래서 그러한 깨달음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 가운데 구원을 갈망하게 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붙잡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율법만 주시고

그들을 율법의 저주 아래만 두신 것이 아니라, 율법 안에 동물의 희생제사

제도를 주심으로써 죄사함과 구원의 방도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과 우리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그림자를 가졌고, 우리는 실체를 가졌으며,

그들은 희미했고, 우리는 확실하게 드러났으며,

그들에게는 그것을 효력 있게 할 성령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성령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는 오히려 이스라엘과 우리가 본질적으로 동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하고 불순종하여서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은

우리도 불신앙하고 불순종하는 삶을 지속하게 될 때에

동일하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에 대한

진지한 경고의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 본문을 시작하면서

두려워할지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4:1)

우리 가운데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세대의 실패가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실패한 이유, 히브리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2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4:2)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믿음을 결부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지 않고,

믿음을 결부시키지 안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무리 선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구원을 약속하셨어도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지 아니하면,

믿음을 그 말씀에 결부시키지 아니하면,

그 말씀이 나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와서 말씀을 많이 듣고 성경공부 많이 하는데,

단순히 귀로 듣고 지식을 쌓는 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에 나의 믿음을 삶과 믿음의 길과 행위에 결부시켜야

그 말씀이 실질적으로 나의 말씀이 되는 것이고,

내 마음에 심긴 생명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끝까지 믿음을 유지하는 자가 애굽에서 나온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약속의 땅에 이르는 것처럼,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삶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원한 천국에서 누릴 안식을

여기에서도 맛보고 마지막때에 완전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에 대해서 두 가지로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첫 번째가 하나님의 말씀(12)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지 않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반드시 이룹니다.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의 검은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깊이 꿰뚫으며

인간의 마음에 말하지 않은 생각이나 숨겨진 개념들까지 감찰합니다.

 

하나님은 얇은 껍데기 같은 외적 경건 밑에 감추인

인간의 진정한 생각을 보십니다.

우리는 다 그분 앞에 벌거벗은 자와 같이 드러나게 될 존재들입니다.

말쓰앞에서 정결케 된 사람들이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 대제사장 예수님을 소개합니다(14~5:10).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하신 분입니다(2:9, 14~18).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사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나아가심으로써

대제사장의 사역을 성취하셨고 그 효력은 사람들에게 지금 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셨기에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의 시련을 아십니다.

그분의 승천은 하나님의 보좌, 하늘의 지성소로 단번에 나아가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굳게 잡으라는 것은 단순히 인내하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대해 두려움 없이 담대히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을 받고 있었던 것처럼

그분도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수 있는 힘은

빌라도 앞에서 믿음의 고백을 드러내신 분으로부터 옵니다(딤전 6:13).

예수님께서 우리를 동정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때,

우리는 용기를 얻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히브리서에서 신약의 가장 중요한 초청을 마주 대하게 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1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뿌림을 통하여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왜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합니까? 16절입니다.

긍휼하심을 얻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포사이스(P. T. Forsyth)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죄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진지한 믿음의 기도에 바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교만의 극치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만 그분 없이도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의 자리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중대하고 시기 적절한 자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맛볼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안식을 맛볼 수 없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보장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듣고도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하여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 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참 안식의 자리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말씀을 듣고도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하면

구원얻었다는 것 외에 매일 매 순간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임재와

동행의 기쁨으로 주님이 주시는 참 안식을 못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광야에서 살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이듯...

이 땅에서 부분적으로 안식을 경험하는 삶이

영원한 안식을 온전히 누리게 되는 소망이 됩니다.

매일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결부시키십시오.